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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흑인 비극, 늘 그가 지켰다...돈 안받는 '단골 변호사' 크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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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조지 플로이드 사건 맡은 변호사...흑인들의 단골 변호인

퍼거슨 총격 사건도 수임..."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는 사회 꿈꿔"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46) 사건이 미국을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숨을 못 쉬겠다"고 애원했는데도 끝내 목을 눌러 숨지게 한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입니다.

비슷한 사건은 올들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2월 미국 조지아의 주택가에서 조깅하던 흑인 아후마우드 알버리(25)가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총을 쏜 백인 아버지와 아들은 사건 발생 2개월이 지나서야 체포됐습니다. 3월 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응급의료요원 브레오나 테일러(26)는 자신의 집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경찰이 마약 사건을 수사하겠다며 새벽에 들이닥쳤다가 벌어진 비극입니다.

이 세 사건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같은 사람이란 것입니다.

흑인 인권 변호사 벤자민 크럼프(50)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맡으며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어가는 광경을 우리 모두가 눈앞에서 봤다"고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크럼프는 인권 변호사 겸 사회운동가로 수년간 유색인종, 특히 흑인 관련 사건을 다뤄왔습니다. 사건 상담은 무료입니다. "이길 때까지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게 그가 내 건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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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크럼프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비롯해 흑인 관련 사건의 대표 변호사로 꼽힌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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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럼프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는 "왜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쪽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관심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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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무실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사건 상담은 무료이며 소송에 이길 때까지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벤자민 크럼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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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명성을 얻은 건 2012년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에 의해 살해된 흑인 트레이본 마틴(17) 사건을 맡으면서입니다. 법정에서 짐머만이 자기방어를 위해 마틴을 총으로 쐈다고 하자 그는 "흑인인 마틴이 같은 주장을 했다면 법원에서 받아들였겠는가"라고 되받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꼬집은 거죠. 그의 활약에도 짐머만은 무죄 평결을 받아 풀려납니다. 이어 배심원단 6명 중 5명이 백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때부터 거리에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패소했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립니다. 사건 의뢰도 쏟아졌습니다. "제 사건도 마틴과 비슷한데요"로 운을 떼는 전화를 하루 50통, 편지는 30통씩 받았다고 합니다.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흑인 마이클 브라운(18) 사건도 그가 담당했습니다. 백인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살해된 아프리카계 운전기사, 이유도 없이 학교에서 살해된 흑인 고등학생 등 이후 그가 맡은 사건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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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6살의 흑인 청년 보텀 진이 강도로 오인돼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다뤘던 크럼프의 모습(맨 오른쪽). 오인사격을 한 경관은 유죄 평결과 함께 10년 형을 받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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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패소만 한 건 아닙니다. 배상금을 받거나 승소한 사건도 여럿 있었습니다. 200여명이 있던 나이트클럽에서 싸움에 휘말려 기소된 흑인을 변호해 나이트클럽으로부터 490만 달러(60억원)의 합의금을 받아냈습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유원지에서 장난감 총을 갖고 놀다가 경찰관에게 오인 사살당한 흑인 타미르 라이스(12) 군의 유족에는 600만 달러(73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 사건 역시 크럼프가 맡았습니다.

흑인 회계사 보텀 진(26)이 강도로 오인돼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도 그가 맡았습니다. 오인사격을 한 경관은 10년 형을 받았습니다.

인종차별에 맞서 인권을 수호해온 공을 인정받아 크럼프 변호사는 마틴 루터킹 서번트 리더상, 엘리노어 루즈벨트상 등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변호한 사건들을 바탕으로『오픈 시즌(특정 집단을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도한 '마이 브라더스 키퍼(My Brother’s Keeper)'프로그램과 연관된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마이 브라더스 키퍼는 흑인 학생들이 끝까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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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텀 진 측을 변호했던 크럼프 변호사(오른쪽)가 승리가 확정되자 유족들과 손을 굳게 맞잡아 올린 모습. 오인사격한 백인 경관에게는 10년 형이 내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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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활약에도 차별의 벽은 여전하고, 맡아야 할 사건도 쌓이고 있습니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는 흑인의 숫자는 백인의 두 배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아직도 평등한 사회로 갈 길이 먼 것이죠.

그는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흑인이 더는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고 모든 사람과 똑같이 법에 따라 보호받는 세상을 꿈꿉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7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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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색인종들이 살해되고 있는 현실을 다룬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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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김지혜 리서처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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