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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이재명 지사 대법원 판결

이재명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내 정치의 동력…시스템 뜯어고치고 싶다”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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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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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정치를 그만두는 건 별 미련이 없지만 선거비용 변상 문제로 신용불량자의 삶을 살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겉으론 피에 젖은 갑옷 입은 야전지휘관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갑옷을 벗으면 속살 여린 사람에 불과해 치열하게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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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치인은 단연 이재명 경기도지사(57)다. 감염병에 대한 발 빠른 대처로 지지율이 수직 상승중이다. 3일 발표된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의 범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18%의 지지율로 이낙연 의원(30%)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 1월 조사 대비 이 의원은 4%p 하락한 반면, 이 지사는 10%p 상승했다.

그의 대표적 정책으로 포퓰리즘 논란을 빚었던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대중과 정치권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지금은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난 1일 수원 팔달산 자락에 위치한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이 지사를 만났다. 그는 “가족이 사는 분당 집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만 빨랫감을 가지고 가고 나머지 날은 공관에서 출퇴근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엄중함 속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일벌백계 위해선 ‘쇼’도 필요”

신천지본부에 직접 출동하자
일각에선 ‘쇼’라는 지적 나와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보다는
위반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
일부러라도 보여주고 소문내야


- 부인은 왜 공관에 들어와 지내지 않습니까.

“분당에 집이 있는데 굳이 공관에 들어와 살 필요가 있나요? 또 공관 위층에 주거공간이 있기는 한데 유용하지는 않아 아내도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아요.”

- 공관에서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뭘 하나요.

“보통 새벽 1시에 자고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는데, 자기 전까지 시간을 SNS와 기사를 보는 데 많이 써요. 일을 하기 위한 일종의 기초자료 수집 차원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보려는 거죠. 실제로 댓글을 통해 공무원들은 모르고 있던 중요한 제안이나 신고도 많이 받습니다. 재난기본소득으로 준 지역화폐를 차별한다는 제보도 SNS로 받은 거고요. 아무래도 경기도민 1370만명을 일일히 직접 접할 수 없다보니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엔 SNS만한 게 없어요. 제가 읽고 반응한다는 사실도 알려드려야 하고요. 문제는 민원이 늘어나고 있어 공무원들의 업무가 많아진다는 점이죠. 하하하…”

-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지율이 껑충 뛰었습니다. 반등 계기는 사태 초기에 직접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과천 총회본부에 출동해 교인 명단을 받아낸 일이었어요. 꼭 직접 가야 했습니까.

“선출직 공직자, 특히 단체장의 역할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거예요. 신천지의 경우 신도 명단을 주네 마네 하는 협상을 일주일이나 하고 있고 안 되면 검찰이 압수수색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어요. 그런데 의외로 우리나라는 법령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요. 찾아보니 복지부 장관이나 시장·군수 등 자치단체장은 역학조사를 할 수 있고 불응하면 처벌한다고 명시돼 있더라고요. 공무원을 보내도 계속 명단 제출을 거부하길래 제가 직접 간 겁니다.”

- 도지사가 출동하니 겁을 먹었나봅니다.

“신천지본부에 가자마자 제가 통보했죠. 첫째, 안 주면 줄 때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둘째, 조사에 불응하면 체포한다. 셋째, 체포하면 모든 신천지본부 컴퓨터를 다 뒤져서 포렌식한다. 그러니까 명단을 내놓더라고요. 이후 이만희 총회장에 대해서도 코로나19 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는데 불응하길래 종교집단의 최고지도자도 도지사의 행정명령에 응해야 하는 도민이란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간 거예요. 이 총회장은 결국 제가 도착하기 직전 빠져나가 과천에서 검사를 받았죠.”

- 가장 최근엔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 2주간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 데 이어 이곳 직원이 다른 물류센터에서 교류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면 쿠팡의 도내 16개 모든 물류센터에 대해 시설 내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기로 했어요.

“비유하자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씨는 이미 온동네에 뿌려져 비만 오면 쑥쑥 자라요. 원천봉쇄는 불가능하죠. 어딘가에 싹이 틀 때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꽃이 피어 순식간에 확산돼요. 그래서 잘 잘라내는 것만큼 속도가 중요합니다. 쿠팡은 확진자 발생 초기에 방역지침도 제대로 안 따르고 명단도 내놓지 않았어요. 특사경을 구성해 강제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명단을 내놓았죠. 기업이 영업상 이익을 위해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겨 공중에 위험을 가하면 제재해야죠.”

- 이재명이 일은 잘한다, 시원하다는 평가도 많지만 일각에선 튀어 보이기 위한 쇼라는 시선도 있어요.

“지방정부도 독립된 하나의 정부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치가 아니라 행정명령이라는 용어도 쓰고 있는 거고요. 또 하나는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보다는 사람들이 위반하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일벌백계를 위해 일부러라도 보여주고 소문내야죠. 그런 측면에서의 쇼라고 하면 맞습니다.”

- 2015년 성남시장으로 재직 때 ‘메르스 전사’로 이름을 날렸죠. 그때의 학습효과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까.

“매우 큰 도움이 됐죠. 당시 중앙정부와 달리 저는 법령을 찾아 확진자 동네와 동선을 공개했어요. 인권침해라며 중앙정부와 정치권,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죠. 저는 진정한 포퓰리스트는 저를 포퓰리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법령에 있는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남들이 안 하는 거 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선동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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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가지면 독재할 거라고?”

흙수저도 못 되는 ‘무수저’ 출신이
최종 권력 가질 가능성 있겠나
모든 정책 사전 검증·대안 준비
성남시장 시절 기본소득 실험 뒤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에 앞장


- 배달의민족 수수료 논란이 일자마자 배민을 대체할 ‘공공앱 개발’을 선포하는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행동이 너무 앞서가는 것도 포퓰리스트라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요.

“심지어 제가 위험한 사람이라거나 권력이 주어지면 독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들어요. 그런데 흙수저도 못 되는 무(無)수저 출신인 제가 최종 권력(대통령)을 가질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제가 하는 모든 정책은 철저한 사전 검증과 후속 대안들까지 준비된 후 국민과 국가에 이익이 되는 방향일 때만 시작해요. 공공앱 개발만 해도 지역화폐망에 온라인을 결합한 공공앱 개발 계획이 이미 있던 차에 배민 논란이 있길래 주말 동안 고민해 발표한 거였어요.”.

- 기본소득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집착해온 겁니까.

“제가 살아온 환경 때문일 수 있는데 저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저의 정치 동력이기도 하죠. 저나 제 가족, 제 이웃들의 가난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대학 입학 후 알았거든요. 그걸 뜯어고치고 싶었고 일종의 소명이 됐어요. 스물일곱살에 판검사 발령을 거부하고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고요.”

- 그 해법이 기본소득이란 건가요.

“모두가 법과 규칙만 잘 지켜도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핵심은 경제예요. 모든 문제의 근원이니까요. 성남시장 재직 때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과 지역화폐를 활성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차에, 한신대 강남훈 교수를 만났고 기본소득 시행을 제안받았어요. 재정여건상 모든 시민에게는 못주고 성남에 3년 이상 산 만 24세 청년들에게 100만원씩 지역화폐로 주는 부분적 기본소득을 실험해봤죠. 그 효과를 확인했고요.”

- 결과가 좋았군요.

“모든 산모들에게도 50만원씩 줘서 총 250억을 지역화폐로 지급했는데 동네 전통시장과 망해가던 골목상권이 살아났어요. 바로 이거다 생각했죠. 부수적 효과가 엄청 크니까요. 불평등 완화는 물론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동네 골목상권이나 영세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어요. 또 공급 측면이 아닌 수요 측면을 지원해 매출을 증대시키니 생산도 유발해 경제의 지속성장이 가능해요. 시민들의 만족도도 높고요.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인 만큼 모든 국민이 똑같이 받아야 합니다.”

-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국민이 동의할 경우 증세로 해결하면 돼요. 이론으로만 접할 때는 압도적 다수들이 증세를 무조건 반대하지만 일단 기본소득을 경험하면 거의 모두가 증세에 동의할 거라는 확신이 저는 있습니다. 극소수를 뺀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이는 이번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을 통해서도 확인됐잖아요. 여기에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돈을 버는 기업들에게 이익의 일부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한다거나 구글·트위터 등 디지털 기반 기업에 데이터세를 부과하는 식의 조세 신설도 필요하죠.”

상고심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는 2018년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4가지 혐의 모두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부분과 관련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8년 KBS토론회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지요?”라는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의 질문에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라고 답변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로 인정된 것이다. 이 지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공직선거법상 1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지사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보전비용 38여억원도 반환해야 한다.

- 상고심 선고가 많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정치를 그만두는 건 별 미련이 없습니다. 이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선거비용 변상 문제로 신용불량자의 삶을 살게 될까 두렵죠. 이래서 극단적 선택을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겪을 고통이 너무 크니까요.”

- 결국 지금 재판으로 이 지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셋째 형님(이재선씨)과 관련된 일이에요. 그 형님도 2017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지난 3월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재판을 받으며 심경이 복잡했겠습니다.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하며 한동안 침묵하다가) 우리가 7남매인데 여동생이 죽고 셋째 형님도 어머니보다 먼저 갔어요. 제일 큰 회한은 제가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 셋째형을 진단받게 해서 치료하지 못한 점이에요. 형님이 심하게 반발하고 정치적 탄압이라며 저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포기했거든요. 결국 증세가 악화됐죠. 차라리 그때 진단받게 했더라면 저도 지금의 이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형님도 나아졌을 텐데….”.

- 지난해 11월 대법원에 이 지사를 처벌한 법률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공개변론을 신청했어요.

“중대한 헌법·법률적 쟁점이 있고 최선을 다하자는 취지에서인데, 정말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말은 제가 도지사를 더 하려고 시간 끈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대법원이 가급적 빨리 결론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최근 페이스북에 한명숙 전 총리와 관련해 검찰을 비판하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고 썼다가 시사논객 진중권씨와의 SNS 논쟁으로 이어졌죠. 진중권씨의 발언 요점은 “이 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으려 한 것은 검찰이 아니라 문빠였다는 것”인데요.

“검찰은 인사권자에게 달려들 정도로 자기 의지가 강한 조직이에요. 누구에게 놀아났다(고소고발에 의한 수사일 뿐)는 건 옳지 않은 이야기죠. 그런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해 무죄증거를 숨기거나 조작하고 언론플레이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피의자의 범죄보다 더 중범죄입니다. 개인의 범죄와 국가권력을 등에 입은 범죄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검찰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서 우리 사회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은 공염불이에요. 전 그 얘기를 한 겁니다 솔직히 한 전 총리의 유무죄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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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지사 공관./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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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국민이 결정할 뿐”

문 대통령 지지자 인정 구하거나
지지기반 확충 꾀한다는 건 오해
국민에 인정 못 받으면 소용없어
선거법 위반 상고심 무죄 나와도
국민의 호출 없인 대권 안 나서


- 이 지사가 한명숙 전 총리의 재심운동을 응원한다고 한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나친 과대평가 아닐까요?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겁니다. 개인은 눈 둘, 귀 둘, 입 하나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 국민은 눈과 귀 각 1억개, 입 5000만개를 가진 데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집단 지성체예요. 대통령 탄핵도 국민이 한 것이고 정치인들은 사실상 국민 뜻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거잖아요. 그런 국민을 보고 가면 되지, 소수의 정치인 또는 집단에 뭘 연연하겠습니까? 미래통합당이 태극기부대에 휘둘리다가 대세를 망친 것과 비슷한 꼴이 될 텐데요.”

- 대선 경선 이후 이 지사에게 적대감을 보였던 세력을 원망하거나 신경쓰거나 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신경 쓰고 원망한들 뭐하겠어요? 그보다는 말은 없지만 제대로 세상을 보는 다수의 국민들을 봐야죠.”

- 그래도 내상을 많이 입었잖아요.

“배를 타다 보면 파도도 치고 그 파도의 포말이 튀기도 해요. 옷 젖는 게 두려우면 배를 타지 말아야죠. 그런데 사실 예전에는 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표현 방식이나 행동에 있어 오버를 많이 했어요. 벼룩은 요란하게 뛰어야 보일까 말까 하니까요. 그런데 도지사가 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안 그래도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덩치가 큰 소가 됐는데도 벼룩처럼 뛰면 미친소가 되는 거예요(웃음).”

- 이 지사에게도 손가혁(손가락혁명군)이라는 지지자 그룹이 있지요.

“대선 경선 직후에 공식 해체돼 뿔뿔이 흩어졌어요. 워낙 극렬하게 보였으니까요.”

- 상고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바로 강력한 대권 후보로 부상할 텐데,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국민이 판단하겠죠. 부를 때까지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솔직히 대선 이야기는 아직 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섣부르고 무의미하니까요. 당장 닥친 일도 많고 재판 문제도 걸려 있고…. 지금은 도정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 그렇다고 해도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를 대권 경쟁에서 불리한 일이잖아요.

“굳이 지지기반을 확충할 필요를 못 느껴요. 그런 마음을 먹어본 적도 있지만 안 되더라고요. 가능성도 없고요. 저는 정치적으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에요. 후광도, 조직도, 학연·지연도 없는 혈혈단신에 가깝죠. 그럼에도 일부나마 인정받은 이유는 제가 맡은 일의 성과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러면 그 길밖에 없는 거죠. 주인(국민)에게 인정받아야지 같이 일하는 머슴들(정치인)에게 인정받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 광주에서 호남 당선인 일부와 비공개 회동을 한 데 이어 민주당 소속 부산시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을 두고 대권 경쟁을 위한 당내 기반 다지기라는 관측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만난다고 그분들이 제 편이 되나요? 누군가와 만나 밥을 먹으면 세력이 확산된다는 생각은 정치인을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그들은 의외로 자기 결정권이 매우 취약한 사람들입니다. 집단지성체인 국민을 따라가기도 바쁘죠. 따라가기만 해도 훌륭한 거예요. 제가 그걸 잊고 지난 대선 경선 때 오버하다가 피해가 크잖아요. 기성정치에 젖어 그저 많이 나서면 인정받을 줄 알고 무리한 거죠. 정치판이라는 전쟁터에서 제가 얻은 결론은 모든 것은 국민이 결정한다와 결국은 실적과 실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 자기 반성이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제 참모들도, 저도, 제 가족들도 고생했죠. 하하하…. 과욕 부리고 겸손하지 못했어요. 말로는 집단지성체인 국민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교만하지 않았나 자성하죠. 일부에게 격렬한 반감을 사고 각종 정치적 공격과 음해도 당하고 재판까지 받으면서 든 생각입니다. 경험으로는 매우 썼지만 약으로 쓰면 되죠. 위기는 기회니까요.”

- 3년 전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보다 지금의 이재명이 나아진 점이 있다고 자평하나요.

“많이 마모되고 조금은 철이 들었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되지 않는다, 무리하면 망한다, 그런 걸 체감했으니까요.”

여전히 적잖은 사람은 대선 경선 이후 불거진 그에 대한 각종 논란과 6·13지방선거 직후 카메라 앞에서 그가 보인 오만한 태도를 마음 한켠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제대로 찍은 이재명 표의 경우에도 그걸 이재명 후보의 말을 다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래, 찍어는 준다. 그런데 너 여기까지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찍은 유권자가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정치인 이재명이 넘어야 할 산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 노 전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이 있었지만, 이 지사는 차가운 머리만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주 악의적인 프레임 공격 때문에 그렇게 이미지화된 측면이 있죠. 예를 들면 성남시장 시절 제가 철거민을 때렸다거나 장애인들을 못 다니게 하려 엘리베이터 전원을 껐다든가…. 다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인성이 나쁘다는 정치적 공격이 매우 격렬하고 집요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매우 섬세하고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도정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고 있고요. 제가 겉으로는 피에 젖은 갑옷 입은 야전지휘관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갑옷을 벗으면 속살 여린 사람에 불과해 치열하게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의 지지율 반등이 보여주듯, 이 지사의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봅니까.

“제 삶 자체가 잡초 같으니까요. 공격도 많이 받았지만 잡초는 원래 잘 밟아줘야 잘 자라고 그렇지 않으면 웃자란다는 설이 있습니다(웃음). ”

- 이 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 촛불정국 속에서 박근혜 탄핵을 제일 먼저 이야기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했어요. 지금 이야기가 나오는 박근혜 이명박 사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사회에 권한과 책임이 분명해졌으면 좋겠어요. 법과 원칙과 합의, 이런 게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힘센 사람들이 안 지키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니 마치 법률과 상식을 어기는 것을 능력으로 인지하는 사회가 됐죠.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예외가 있어선 안돼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사면은)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의혹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요.

“제 입장은 언제나 명백합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죠. 위안부 운동의 역사적 의미나 대의, 거기에 헌신한 공은 인정해주되,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일까지 덮어줘선 안 되죠. 문제될 일이 있는지 아직은 모릅니다만 공적 활동에 의혹이 제기됐잖습니까. 그러면 분명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실체적 진실에 따라 잘못한 게 있으면 마땅히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죠.”

인터뷰는 늦은 점심식사까지 포함해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정치인이나 행정가로서, 그리고 개인 이재명으로서 삶의 철학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정치적으로는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 대동세상(大同世上·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에요. 개인적인 삶의 철학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고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길은 저절로 주어진다는 거죠. 세상이 제 마음처럼 안되더라고요. 하하하….”

박주연 오피니언팀장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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