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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여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순 없다…남북이 돌파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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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북 도발 위협에도 언급

박정희·노태우 때 합의 일일이 거론

야당 “굴종적 대화, 평화 안 왔다”

북 “서릿발치는 보복 계속” 또 위협

중앙일보

문재인


문재인(얼굴) 대통령의 선택은 다시금 ‘남북 협력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었다.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필두로 연일 군사행동까지 언명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엄중하다”고만 했을 뿐 관련 사안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운명의 주인’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 ‘국회 비준’ 같은 표현을 써가며 북한을 향한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6·15선언 20주년인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을 잘 알고 있다”며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했다. 북한보단 오히려 미국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언급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도 “한반도는 아직 남과 북의 의지만으로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도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분명히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 “남북합의 국회 비준됐다면…” 민주당 비준 다짐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일부 탈북자 단체 등의 대북 전단과 관련,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소통 창구를 닫으면서 국민은 혹여 남북 간 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갈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하겠지만, 유엔 제재나 미국·중국과 관계없이 남북한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간 북한 핵 문제의 당사국인 북·미의 관계 개선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하노이 노딜(No Deal)’이라 불리는 지난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할 수 있는 걸 먼저 하자”는 기조로 바뀌어 왔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과 공동으로 비무장지대(DMZ)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는 제안부터 ‘개인 자격’ 금강산 관광 재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추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한 남북 보건 분야 협력 제안 등이 잇따라 나왔다.

문제는 이런 제안에 북한이 묵묵부답이거나 오히려 “믿어 달라더니,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북한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고 표현하지 않았나. 남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 외에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 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 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합의들은 남북 관계 발전의 소중한 결실”이라며 “이와 같은 합의들이 국회에서 비준되고 정권에 따라 부침 없이 연속성을 가졌다면 남북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176석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비준을 다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남북 관계 발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정상 간 합의서의 법적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 또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보수 야권은 반발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굴종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화했지만 평화가 오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20대 국회의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녕 이렇게 북핵 폐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되려는 거냐. 이건 평화를 향한 길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북한은 이날 6·15 남북 공동선언과 관련해 예년과 달리 침묵했다. 대신 남측을 향해 “서릿발치는 보복 행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정세론해설을 통해 “이미 천명한 대로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고 그다음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에 위임될 것”이라며 “감히 하늘에 대고 삿대질한 원수들을 겨눈 우리의 서릿발치는 보복행동은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호·윤성민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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