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연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라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압박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코로나19 대응 실패 논란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 시간표에 맞춰 백신을 ‘기습 승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전성과 효과성 입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치 논리’에 따라 백신이 승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장관을 만나 백신 개발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였다고 백악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자르 장관에게 “올해 말보다 더 빨리 백신을 접종할 수 있길 바란다”며 올해 연말로 제시한 개발 시한을 더 단축하라고 닦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자르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코로나19 백신 연내 개발을 목표로 만든 민관협동기구인 ‘초고속개발팀(operation warp speed)’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개발에 조급한 이유는 “트럼프의 관리 아래 바이러스를 잡고 경제가 완전히 재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유권자에게 심어주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경기침체,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리더십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 백신 개발을 두고 벌어진 미·중 경쟁을 의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국이 먼저 백신을 개발하면 체면을 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기습적인’ 백신 승인으로 11월 대선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만약 백신이 올가을에 승인된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긴급 사용 허가’를 내는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통상 백신 개발에는 5~10년이 걸리지만, 이러한 절차를 1년 내외로 단축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제약사들은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전에 통상 하던 동물시험 절차를 생략하고, 1차로 진행하는 안전성 시험과 2차로 진행하는 효과성 시험을 병합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존슨앤존슨,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대형 제약사들이 올해 말 출시를 목표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타임라인에 집착하면서 보건 당국자들이 안전성과 효과성이 충분히 검증되기 전에 백신 사용을 제한적으로 승인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버드 글로벌보건연구소 소장인 아쉬쉬 자 교수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FDA가 과연 과학과 증거를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타임테이블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 걱정하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이미 FDA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썼다가 철회한 사건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홍보하며 한때 복용 사실을 밝힌 약이다. 지난 3월 FDA는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긴급 사용 허가’를 내줬지만,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나와 지난 15일 결정을 철회했다. 그 사이 FDA는 이 약에 대한 109건의 심각한 심장질환과 부작용 400건을 보고받았다.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을 급하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험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방법이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15일 “예를 들어 건강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예방접종을 한 다음,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해 그들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시킬 수 있다”며 “이 논쟁적인 접근법은 FDA의 승인을 받고 미 윤리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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