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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소·부·장 국산화 '절반의 성공'… 삼성 쓰는 포토레지스트, 5년 더 日 의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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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출규제 1년] ①
日,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 ‘콕’집어 수출규제
1년간 생산차질 없었다… 액체 불화수소서 국산화 성과도
정부 육성하는 100대 국산화 품목, 기술경쟁력 선진국比 61%
WTO 제소·韓 자산압류 임박, 日 추가보복 나설지 촉각

일본이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한 지 1년이 흘렀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일본이 자국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를 정치적 목적으로 ‘무기화’한 것이다.

그간 액체 불화수소 등 일부 품목에서는 국산화 성과를 내며 전화위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소재강국 일본의 벽은 높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미·중 패권경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글로벌 밸류체인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일간 소·부·장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중국은 조용히 그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조선비즈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본 수출규제 이후 지난 1년간의 국내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최근 소·부·장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는 중국 굴기를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국내 소·부·장 업계가 가야할 방향을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제시한다. [편집자 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일본이 일방적인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후 1년 동안 우리는 기습적인 조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를 겨냥한 일본의 일방적 조치가 한국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은 맞지 않았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생산차질도 일어나지 않았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국산화를 앞당기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 핵심품목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조선비즈

그래픽=정다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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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일본이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수출규제에 나선 지 꼭 1년. 문 대통령의 이런 소·부·장 국산화 평가는 맞는 얘기일까.

일본 수출규제 항목 중 반도체 생산의 필수 소재이자 사용량이 많은 액체 불화수소에서 국산화 성과가 있었다. 올 초부터 국내 중견기업인 솔브레인·램테크놀러지가 일본산과 동일한 초고순도 제품을 만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납품하기 시작한 것이다. 액체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 공정 중 20여곳에 투입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일본산 불화수소 의존도는 지난해 1~5월 43.9%에서 올해 1~5월 12.3%로 30%포인트 넘게 줄었다(한국무역협회 집계). 이에 따라 액체 불화수소를 국내 반도체 기업에 납품해 온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올해 영업이익은 24억엔으로 지난해(35억엔)보다 30% 넘게 줄어들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한국으로의 수출이 재개된 모리타화학공업의 불화수소는 수출규제 전 대비 판매량이 30%가량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수출규제가 일부 품목에서는 자국 기업들의 매출 급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대기업의 소⋅부⋅장 혁신 기업 지원과 정부의 관련 예산 확대 역시 일본의 위기가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수출규제가 터진 뒤 소·부·장 100대 전략품목 경쟁력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민관 합동으로 관련 품목 조기 국산화와 대체수입선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달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회사인 세메스 천안 사업장을 찾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일본의 수출 규제 1년을 맞아 소⋅부⋅장 분야 현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장비업체를 방문하게 됐다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불확실성의 끝을 알 수 없다"며 "갈 길이 멀다. 지치면 안된다. 멈추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SK하이닉스의 이석희 최고경영자(CEO)는 비대면 방식으로 엘케이엔지니어링 에버텍엔터프라이즈 쎄믹스 등을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하는 협약식에 참석했다. 엘케이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장비 내에서 웨이퍼를 고정하는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고, 에버텍엔터프라이즈는 후공정 과정에서 칩과 기판의 연결에 사용되는 물질인 플럭스를 생산하는 소재 업체이며, 쎄믹스는 웨이퍼 신뢰성 테스트용 장비 업체다. 외국 기업의 점유율이 높은 소⋅부⋅장 분야에서 국산화 경쟁력이 높은 곳을 선정했다는 게 SK하이닉스 측의 설명이다.

이들 기술혁신기업은 앞으로 2년간 SK하이닉스와 제품을 공동 개발하고 개발된 제품을 SK하이닉스 생산라인에서 직접 테스트할 수 있다. 개발 기간 단축은 물론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SK하이닉스로부터 일정 물량의 구매를 보장받고 무이자 기술개발 자금대출 지원과 경영 컨설팅까지 제공받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내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안을 통해 소⋅부⋅장 산업의 기술 자립화와 공급 안정화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로 했다. 소⋅부⋅장 자립을 위해 올해(1조7200억원)보다 22% 늘어난 2조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소⋅부⋅장 독립을 향해 민관이 뛰는 형국이지만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은 "100대 품목의 기술수준은 선진국 대비 61%에 불과하고, 반도체(38%), 디스플레이(50%)의 기술력이 특히 취약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아직은 이 분야 강자인 일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불화수소 중에서도 가스(기체) 형태 국산화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SK머티리얼즈가 최근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이 공식화되기는 했지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필요한데다 기업이 이를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머티리얼즈가 2023년까지 국내 점유율 70%로 목표로 하는 것은 현재 점유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산화가 더딘 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보면, 같은 기간 절대 수입액이 더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초미세공정 단계에서 쓰는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국산화까지 5년가량이 더 소요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현재 동진쎄미켐이 개발 중인 포토레지스트는 초미세공정에서 쓰기 어려운 불화아르곤(ArF)을 광원(光源)으로 한 것이어서 당분간 일본산 100% 의존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생각보다 큰 차질 없이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맷집이 세서가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관련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언제든지 핵심 소재를 무기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현실에 만족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승리보다는 지구전에 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초 정부는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절차 재개를 공식 발표했다. 오는 8월 한국 법원은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도 예고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것으로, 이는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직접적 원인이어서 양국 긴장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윤민혁 기자(behereno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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