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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왜냐면] 지금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다 / 이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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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필수 ㅣ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코로나19는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표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 변화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타당하지 못한 변화까지 유입되는 것은 아닌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비대면 의료서비스’로 명칭만 바꾼 원격의료 도입이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는 대면진료보다 어떤 점이 뛰어나기에 정부와 관련 산업계에서 이구동성으로 도입을 찬성하는 것일까?

몇 가지 장점은 있다.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도서 지역이나 의료기관에 쉽게 갈 수 없는 환자들의 경우 유용할 수 있다. 의사와 환자 간 감염병 전이를 예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을 방문하기 꺼리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의사와 환자 모두 ‘편하게’ 진료에 응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는 의사와 환자 간 소통과 공감이 줄어들어 환자 병력 청취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진·촉진 없이 화면으로만 보고 진단하기에 오진의 위험이 커지며, 진료 뒤 긴급한 상황에도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영상으로 진료기록 등을 저장·전송하는 과정에서 환자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도 크다. 즉, 환자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정확한 진단의 기회’를 포기해야 할 수 있다.

덧붙여 원격의료로 인해 나이, 경제적 여건, 교육수준, 지역에 따른 의료접근성의 불균형이 야기될 수 있고, 의료전달 체계의 왜곡과 함께 결국 영리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시점에서의 원격의료는 불완전한 진료로 환자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등 ‘거대 병원’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나 경제단체, 헬스케어업계가 찬성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원격의료가 가능한 대형병원으로 몰릴 것이고, 원격의료 기기·기자재를 제조하는 업체는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한 헬스케어 업체도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동네 병·의원은 환자가 줄어 폐업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은 어려워질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고 면밀하게 진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원격의료는 편리함과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시스템으로, 필수의료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필수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필수적인 의료를 말하는데, 원격의료의 도입은 환자 편리성에만 기여할 뿐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환자 편리성도 원격의료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기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우려되는 원격의료 도입 논의를 중단하고, 차라리 ‘포괄적 필수의료 시스템’ 확립에 힘쓰는 것이 어떨까. 국민의 생명·안전 및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는 필수의료 시스템을 준비해 아동과 모성,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돌보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안전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심각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의 출현이 비대면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원격의료 도입에 근시안적으로 몰입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필수의료의 정비·확립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변함없이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 존재한다. 편리함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이 폭염에 마스크를 벗지 않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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