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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조한욱의 서양사람] 친절한 자연과 위험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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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 하나가 훗날 나폴리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소싯적 그의 행적은 그가 남긴 편지 하나를 통해 알 수 있을 뿐인데, 그 편지를 쓴 이유가 자신이 “대단히 저명한 작가”라는 세간의 평이 그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다니 그는 겸허한 인물이었음이 확실하다. 열아홉에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의 집을 나와 마르세유, 툴롱 등지의 장터를 떠돌아다니던 그는 교황 클레멘트 9세의 사망 소식을 듣자 장례식에 도움이 되고자 무작정 로마를 향했다. 이후 스물하나에 나폴리에 정착한 그는 앙투안 뷜리퐁이라는 프랑스 이름마저 안토니오 불리폰이라고 이탈리아식으로 바꿨다. “친절한 풍토와 기후, 매력적인 주민들” 때문에 나폴리를 영원한 안식처로 택했던 것이다.

재산도 인맥도 전혀 없는 낯선 땅에서 그는 서점들이 몰려 있는 산비아조 거리의 한 가게에 점원으로 들어갔다. 성실성을 바탕으로 곧 서점을 소유하게 된 그는 출판의 길로 나섰다. 아껴 마지않던 나폴리 인근 지역의 지도를 만들어 출간하기 시작한 그는 나폴리 왕국의 계보와 역사와 법률로 영역을 넓혔을 뿐 아니라, 신문까지 발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 정치와 문화계의 중요한 인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서점이자 출판사는 17세기 말에 번성했던 나폴리 문화의 구심점이었다.

좋은 일에 낀다는 마가 그에겐 인간이자 그들의 제도였다. 출판과 언론 모두에서 불구대천의 경쟁자였던 나폴리 출신 도메니코 파리노의 비방과 모함은 불리폰 몰락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그에 더해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그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프랑스인으로서 의혹의 목표가 되었던 그는 나폴리 처자와 신속하게 결혼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왕위계승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가 나폴리를 장악하자 그에겐 설 곳이 없었다. 나폴리를 떠나야 했던 그는 에스파냐에서 종적 없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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