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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살인의 추억'처럼…범인과 이춘재, 혈액형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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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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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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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서 형사. 왔어! 미국에서 서류가 왔어. 빨리 읽어봐."

"너 이 새끼 그동안 우릴 비웃었지? (서류를 읽은 후) 뭔가 잘못됐어. 싹 다 거짓말이야. 필요 없어. 네가 정말 아니란 말이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에 나오는 장면이다. 영화 후반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박해일)의 DNA가 범인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받아들고, 이성을 앞세웠던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무너진다.

박두만 형사(송강호)는 특유의 육감을 앞세워 박현규의 눈을 바라보지만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을 남기고는 놓아준다. 그렇게 영화 속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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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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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사건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34년만에 풀리면서 실제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대목이 적지 않다.

영화 속의 박현규 처럼 유력한 용의자로 이춘재를 두고 수사를 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범인과 혈액형이 다르다’는 결과를 냈다. 결국 이춘재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됐고, 엉뚱한 사람이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였다.


'이춘재 체모' 분석한 국과수 "범인은 B형, 이춘재는 O형"...엉뚱한 사람이 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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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갑룡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춘재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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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총 3차례에 걸쳐 이춘재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1987년 7월로 화성살인 6차사건(87년 5월)이 발생한 직후다. 당시 이춘재는 화성 사건과 별건인 1986년 8월 발생한 초등학생 강간사건의 용의지로 지목돼 경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이듬해 8차 살인사건(1988년 9월)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그해 11월 이춘재를 또 수사대상에 올렸다. 그 사이 이춘재는 살인을 3번이나 저질렀다.

앞선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체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살인사건 범인과 이춘재의 혈액형이 다르다는 결과를 내놨다.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는 B형이지만 이춘재는 O형이었다. 모발의 경우 혈액형을 확인할 수 있는 항원이 극미량이고, 분석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갖고 왔다.

특히 8차사건의 경우 이듬해 윤모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억울하게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 됐다. 잘못된 과학수사 결과로 진범이 풀려나고, 엉뚱한 사람이 옥살이한 것이다. 9차 사건때는 DNA 분석을 위해 체모를 일본으로 보냈지만 결국 범인을 찾지 못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과 그의 가족, 그 외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이춘재의 발크기가 달랐다...영화에선 송강호가 발자국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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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고 과거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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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경찰은 이춘재를 다시 수사했다. 1989년 7월에 화성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J양 실종 사건과 관련해서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의 용의자로 꼽혔으나 6차사건에서 발견된 발자국의 크기(255mm)가 이춘재 발크기(265mm)와 다르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박두만 형사가 용의자의 운동화를 갖고 증거를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처럼 실제 사건도 미제로 끝난 후 30여년이 흐른 지난해 경찰은 이춘재 DNA와 화성 사건 증거물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보고 이춘재를 다시 수사, 자백을 받았다.

화성 사건으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DNA 분석기술이 결국 진범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처음 용의자로 지목된 1987년 7월 이춘재를 붙잡았다면 이후 발생한 8건의 살인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경찰은 "당시 이춘재를 수사대상자로 선정해 수사했음에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조기에 검거하지 못하고,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은 경찰의 큰 잘못"이라며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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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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