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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ESC] “인류는 별을 쫓던 이들의 후손이다”…아프리카의 밤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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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나의 나미비아 방송 EBS 유튜브 1위

사막과 바다 만나는 지점에서 스카이다이빙

고원 협곡에서 일정에 없는 숙박

수많은 별똥별 떨어지는 경험 잊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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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이 일상화 되기 전 김도훈 피디는 무선 조종 모형비행기에 소형카메라를 장착해 <세계테마기행> 최초로 항공 촬영에 성공했다. 김도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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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넘은 거 아세요?” 서 감독의 전화를 받고 처음엔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말하는 줄 알았다. “<두 개의 바다가 만나다, 나미비아>편의 유튜브 조회 수가 천만이 넘었어요.” 짧은 통화를 끝내고 유튜브를 열었다. ‘EBS’로 검색, 조회 수로 정렬하니 역대 <세계테마기행> 중 1위일 뿐 아니라 <이비에스>(EBS)가 유튜브 채널을 연 이래 업로드한 전체 작품 중 조회 수 3위였다. 1042만. 이게 뭔 일이래?

난 그저 김도훈 피디, 서종백 촬영감독, 홍영아 방송작가, 박진호 코디네이터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데, 코로나19가 가라앉아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쌓인 댓글을 훑어보았다. 아랍어, 영어, 타밀어, 스페인어…. 천만 시청자가 내국인만이 아니라 유럽·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등 전 대륙에 분포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근데 코로나19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해외여행도 못 가는 마당에 다큐멘터리나 보자, 뭐 그런.

삭제된 일화들이 떠올랐다. 김 피디도, 서 감독도, 나도 아프리카의 신생국 나미비아는 처음이었고 항공촬영, 스테디캠 촬영 등 전에 없던 시도까지 하면서 좌충우돌의 나날이었다. 특히 스카이다이빙은 방송기획안에도 없던 일이었으니.

“스카이다이빙은 안 돼!”

“이제 와서 한 입으로 왜 두말하고 그래?”

“노작(가), 다른 출연자들은 시켜도 안 할 짓을 왜 하려고 그래? 그 위험한 걸 왜?”

“에미넴의 ‘루즈 유어 셀프’란 노래가 있어. ‘네가 바랐던 모든 걸 한 번에 움켜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붙잡겠어, 아니면 날려버리겠어?’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스카이다이빙 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오면서 검색하니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서 처박힌 사고가 토픽에 올라와 있더라. 불과 얼마 전 일이야. 출연자 다리만 접질려도 촬영 접어야 한다고. 안 돼!”

“그럼 약속을 안 했어야지. 난 이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데. 날씨에 맡기자. 악천후로 비행기가 못 뜨면 나도 깨끗이 접지.”

“좋아. 비행기 못 뜨면 무조건 접는 거야. 오케이?”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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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뱅겔라 해류가 일으킨 모래폭풍으로 인해 중단된 촬영. 서종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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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출연 제의를 사양하다가 나미비아행을 받아들인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아프리카, 인류가 최초로 두 발로 대지를 딛고 걸음마를 시작한 땅. 둘째 스카이다이빙. 영화 <폭풍 속으로>를 본 후 스카이다이빙은 나의 위시리스트 1순위였고 ‘거대사막’과 ‘대서양’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뛰어내린다면 생애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 확실했다. 월비스베이에 도착해 스카이다이빙을 주선하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사무실에 시선을 확 끄는 문장이 씌어 있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겪은 첫 경험은 언제입니까?’ 어린아이 때는 모든 게 첫 경험이다. 은하수를 보는 것도, 라일락 향기를 맡는 것도, 파도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첫 경험이라 할 거리는 준다. 스카이다이빙! 얼마 만에 맞이하는 첫 경험인가?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김 피디의 바람과 달리 날씨는 쾌청, 예정대로 비행기가 뜬다는 통보가 왔다. 그러자 직업의식이 발동한 김 피디가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촬영하겠다고 나섰다. 세스나기 탑승자는 조종사 포함 정원이 다 차 있었다. 190㎝ 거구의 서 감독이 합승할 여유가 없었다. 김 피디가 나랑 몸무게를 합치면 120㎏에 못 미친다고 우겨 기어코 세스나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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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마르면서 말라버린 나미브사막의 고사목. 서종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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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근데 이런! 안전 고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김 피디에게 내게 할당된 안전 고리를 양보하자 정작 나는 안전 고리 없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다이빙을 위해 문은 떼놓았으니 동체가 기울기라도 하면 비행기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판. 고도 3100m에 이르러 조종사가 신호를 보냈다. 밖을 내다보니 붉은 사막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장관이었다. 몸을 비틀어 간신히 스카이다이버 강사와 몸을 연결했다. 두 발을 비행기 밖으로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찔했다. 발 닿지 않는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기분은 어떨까?

핑글. 앞으로 고꾸라지듯 비행기 밖으로 몸이 떨어져 나갔다. 바람이 머리칼을 귀 뒤로 마구 넘겼다. 분명 시속 220m로 떨어지는데도 지상이 멀기만 하니 제자리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낙하산이 활짝 펴졌다. 첫 경험, 세포 하나하나가 꽃을 피우면 이런 느낌일까?

이후 촬영은 순조로웠다.(?) 차바퀴가 구덩이에 빠지면 밀고, 벵겔라 해류가 일으킨 맞바람이 불면 앞으로 기울여 걷고, 모래사막을 만나면 오르내리고…. 18일쯤 지나자 이동 거리가 5000㎞에 달했다. 지구 둘레 ⅛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여정도 막바지에 이르러 수도 빈트후크로 돌아가던 길, 늘 촬영 거리를 포착하기 위해 뜬 눈이던 김 피디가 꾸벅거렸다. ‘조는 걸 보니 방송 분량을 다 채운 모양이구나.’ 고원 협곡을 지나던 중 박 코디와 서 감독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김 피디도 깼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이런 데서 하룻밤 자면 정말 좋겠네.” 다 같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일박하자, 귀국행 비행기 타는 것 빼면 딱히 스케줄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 박 코디님, 운전하시다가 숙박할 데가 있으면 들어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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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400m 고원분지의 테라스 농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바라본 밤하늘. 별 사이로 별똥별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서종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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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팜 게스트하우스. 해발 1400m 고원, 기암괴석 테라스 산이 둘러싼 분지 가운데 있는 숙소였다. 입구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절대고독을 즐길 사람만 오시오.’ 빈 방은 달랑 하나. 대신 화장실과 바비큐장이 딸린 야영장이 있다고 했다. “박 코디님이 방에서 주무세요. 우린 텐트에서 잘 테니.” 텐트를 치는 동안 대서양에서 일어난 바람이 나미브사막을 지나 고원까지 불어왔다.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텐트를 칠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물고서야 바람이 잦아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별똥별이 휙 지나갔다.

“방금 별똥별 봤어?” 나.

“네. 엄청 크던데요!” 서 감독.

“못 봤는데, 둘이서 나 놀리는 거지?” 김 피디.

“지구 어디서나 하루 평균 서른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어. 도시는 너무 환해서 안 보이는 거지.”

“타임랩스로 별똥별을 찍긴 했지만 직접 본 적이 없어. 근데 하루 서른개나 지나간다고! 그렇게 많아?”

“속고만 살았나, 밤새우면 서른개는 보게 될걸.”

근데 밤샐 필요가 없었다. 나미비아는 유성이 많이 떨어지기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서른개 넘는 유성을 볼 줄이야. 그사이 우리가 뱉은 말은 “어, 저기 지나간다.” “앗, 저기!” “오, 저기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김 피디가 말했다. “이번 촬영은 좀 이상해. 출장 오면 늘 일하는 기분이었거든. 이번엔 진짜 여행 같아…. 이만 자러 갈게!” “나도!”

두 사람이 저마다의 텐트로 들어간 후 난 바위에 침낭을 펼치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똥별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광경을 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는 중동, 서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베링해협을 건너 1만5000년 전 아메리카에 닿았다. 지구 전체로 인류가 퍼지는 동안 이동의 큰 흐름은 동쪽이었다. 학자들은 이동의 이유를 기후와 식량난으로 설명하는데 그것이 방향까지 알려주진 않는다. ‘인류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나는 태양을 쫓아서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떠올라 낮 동안 ‘열기’를 전해주다가 서쪽으로 저문 후 다시 동쪽에서 뜨는 태양. ‘해 뜨는 지점’이 낙원으로 여겨졌으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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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농장을 떠나기 직전 촬영한 단 한 장의 단체 사진. 서종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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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이어 태양을 쫒았다. 일생을 쫓아도 이동한 거리만큼 물러난 일출 지점을 보며 죽었지만 세대를 거듭한 끝에 다다른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세상의 끝까지 간 인류가 마주한 건 바다 저편으로 지는 해였다. 남아메리카에서 태양 숭배 문화는 거의 모든 부족의 공통점이다. 해를 쫓아 지구 끝까지 온 이들이 조상이기에.

지구에서 가장 크고 밝게 보이는 건 어느 별일까? 대부분 시리우스나 북극성 같은 틀린 답을 내놓는다. 지나치게 커 보이고 너무 밝아 우린 태양이 별이란 걸 잊는다. 인류가 내내 쫓은 건 태양이란 별이었고, 지금도 별을 쫓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별을 쫓던 기억이 디엔에이(DNA)에 각인된 인류는 언젠가 또 다른 별을 향해 떠나리라…. 97, 98, 99, 100개까지만 별똥별을 세고 잠이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 위로 해가 떴다. 이글거리는 일출 앞에 서자 태양이란 별을 향해 가던 조상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인류는 별을 쫓던 이들의 후손이다.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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