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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리얼한 '관찰예능'에도 대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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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어릴 적 재미있게 봤던 영화 중 '트루먼 쇼'라는 게 있다. 당시엔 "한 사람의 인생이 생중계된다"는 스토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관찰예능' 때문이다. 집 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출연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예능은, 연예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이 거리낌 없이 날것의 일상을 공개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관찰예능을 보면 항상 재미있고 항상 황당한 일이 일어나던데, 그건 모두 100% 실제 상황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관찰예능에도 '대본'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대사까지 세세히 적힌 대본이 있다는 말은 아니고, 장소 섭외를 위한 '진행대본'과 전체 흐름을 이끄는 '상황대본' 정도가 있다. 가령 육아 관찰예능이라면, 무조건 "아이랑 재밌게 놀아줘라" 하면 방송에 쓸 내용이 별로 안 나온다.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키즈카페 가서 아빠 친구 딸이랑 재밌게 놀기'라는 최소한의 설정을 하는데, 이것이 '상황대본'이다.

여기에 출연자들이 움직이는 장소마다 촬영 허가를 받고 카메라를 설치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만약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흐름이 끊겨 출연자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러니 미리 방문할 장소를 섭외하고 촬영 준비를 해둬야 한다. 이것을 정리한 것이 '진행대본'이다. 모두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개입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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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궁금한 것이 카메라다. 출연자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우니 모두 '무인 카메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진 않다. 물론 요즘은 '동작감지 카메라'가 워낙 발달돼 있지만, 때때로 물건이나 얼굴 표정 등을 클로즈업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제작진이 투입된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방 하나에 동작감지 카메라 3~4대 이상이 고정으로 설치되고, 카메라 감독도 2~3명 투입된다. 거실 하나에 방 3개짜리 아파트라면 카메라만 24대 이상이 배치되는 것이다. 여기에 부엌이나 화장실 등 촬영 공간이 추가되면 그만큼 카메라 수도 늘어난다.

이젠 관찰 형식이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이 때론 낯설게 느껴진다. 영화 '트루먼 쇼'는 어느덧 현실이 돼 있는 것이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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