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 한 홍콩 민주화 시위 참여자가 홍콩 주재 미국 영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들고 서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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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자유를 옥죄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민주 진영 인사들의 저서 열람을 금지하는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ㆍ진시황 시대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산 채로 묻어 죽인 일)’가 재현되고, 서슬 퍼런 보안법의 칼날을 피해 언론의 자기 검열도 심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반(反)인권적 조치에 ‘망명 정부’ 구성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4일(현지시간) AFP통신이 홍콩 공공도서관 웹사이트를 검색한 결과, 홍콩 민주화운동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 전 데모시스토당 비서장과 홍콩 입법회 범민주파 진영 소속 타냐 찬(陳淑莊) 의원, 홍콩 자치를 주장했던 학자 친완(陳雲)등의 저서가 홍콩 도서관 수십여 곳에서 대여 불가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도 해당 도서는 열람이 불가능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웡 전 비서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런 조치는) 보안법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범죄로 만들기 위한 도구”라고 비판했다.
또 반체제 인사들에게 홍콩은 이제 발을 들여 놓을 수조차 없는 ‘위험 구역’이 됐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항공 운송의 거점으로 손꼽히던 홍콩이 환승도 어려운 도시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제러미 다음 미 예일대 법학대학원 폴차이중국센터 선임연구원은 방송에 “홍콩 밖에서 중국을 비판해도 관할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안법 저촉 우려에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활동가와 예술가, 학자 등이 홍콩을 거쳐가는 일조차 꺼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언론계에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홍콩 현지 매체들은 취재원들이 인터뷰를 사양해 가명ㆍ익명 처리 여부를 고심해야 하며 ‘홍콩 독립’ 관련 구호를 보도하기만 해도 기소될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여 있다. 스티븐 버틀러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아시아 본부장은 “홍콩보안법의 모호한 특성이 자기검열을 낳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홍콩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슬로건을 본떠 ‘홍콩을 위대하게(Make Hong Kong Great)’ 같은 표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AFP)”는 전언까지 나왔다.
홍콩보안법 반대 목소리는 해외로 확산되고 있다. 4일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 중인 한 티베트 활동가가 홍콩과 연대한다는 글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다람살라=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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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법적인 보안법 강행에 중국을 제재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고 캐나다가 가장 먼저 칼을 빼 들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3일 홍콩과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의 굳건한 신봉자”라며 “앞으로 홍콩에는 민감한 군사물자 수출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처럼 홍콩인들의 캐나다 이민을 장려할 추가 조치도 예고했다. “보안법 실시 이후 홍콩과 사법적 관계를 단절한 것은 캐나다가 처음”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 당국은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존 리 홍콩 보안장관은 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캐나다 정부가 법치보다 정치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캐나다를 포함한 일부 서구 국가들이 인권이라는 구실로 홍콩 문제에 대해 간섭하고 있다”며 내정 침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정부와의 타협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홍콩 민주 진영에선 망명 정부 구성이 거론되는 향후 활동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최근 영국 망명을 승인 받은 사이먼 정은 3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망명 의회를 구성하면 중국 본토와 홍콩 정부에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 없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서방국가로 망명한 민주화 시위 주역 네이선 로(羅冠聰)도 이날 CNN에 “국제전선을 포기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시점”이라며 국제사회와 연대한 해외 투쟁을 제안했다. 반면 웡 전 비서장은 EFE통신 인터뷰를 통해 “아직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서 9월 예정된 입법회(의회) 선거 출마 의사를 드러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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