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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트럼프 "시위대 역사지우기 용납못해"…화합대신 분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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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4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은 4일(현지시간) 인종차별 시위대를 미국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백인 표심을 향해 노골적 구애를 시도했다. 특히 2026년을 목표로 미국 영웅들 동상으로 이뤄진 국립정원을 새롭게 조성하겠다며 행정명령까지 발동했다.

이번 대선을 미국 역사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부정하는 세력 간 대결로 몰아가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인종차별 시위를 계기로 반(反) 트럼프 정서가 확산되고 있지만 오히려 강공으로 전환하며 지지층 규합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정원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우리는 극단적 좌파,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선동가, 약탈자 등을 물리치는 과정에 있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시위대를 맹비난했다.

그는 "성난 폭도들이 동상을 무너뜨리고 우리 역사를 지우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아이들에게 사상을 주입하고 자유를 짓밟도록 놔둘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종말론적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지지층에게 '문화 전쟁'을 호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던 시간에도 백악관 밖에서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에 참석해 일부 과격 시위대가 남부연합 관련 인물들 동상을 훼손한 것을 가리켜 "역사를 말살하고 가치를 지우려는 무자비한 운동"이라며 "그들에게 미국의 가치, 역사, 문화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위대의 목표는 더 나은 미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국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모어산은 조지 워싱턴 등 전직 대통령 4명의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까지 시위대의 표적이 되자 이곳을 방문하는 행보를 통해 백인 보수층 표심을 자극하고 나선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관련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 메시지를 국가를 통합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적·문화적 분열을 촉진하는 데 맞췄다"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는 백악관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하며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 250주년인 2026년을 목표로 동상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선 것도 졸속 논란을 예고했다. 백악관은 관련된 정부 기관들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6개월 내에 공원 용지와 조성 계획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행정명령에는 이미 28명의 인물이 실명으로 포함됐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한 셈이다.

특히 현대사 인물 가운데 공화당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등 보수진영 출신이 주로 포함돼 있어 편향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흑인 중에는 마틴 루서 킹, 해리엇 터브먼, 재키 로빈슨 등 3명만 포함됐고 다른 유색인종은 없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독립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건국의 아버지들'도 결함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노예를 소유했던 일을 거론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리는 제도적 인종주의를 뿌리 뽑을 기회를 맞았다"며 "미국 역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과 우리를 갈라놓은 인종주의 간에 계속되는 밀고 당기기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틀간 트럼프 대통령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 논란이 됐다. 전날 러시모어산에 모인 지지자 7500여 명은 물론 백악관 독립기념일 행사 참석자 수백 명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NYT는 전국에서 불꽃놀이 등 독립기념일 행사가 80%가량 축소됐으나 백악관은 대형 행사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주관한 제2회 '미국을 향한 경례' 행사에는 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미국 전투기 기종이 총동원돼 성대한 에어쇼를 펼쳤고, 밤에는 내셔널몰에서 불꽃놀이도 진행됐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워싱턴DC 지하철 이용객은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10분의 1가량으로 감소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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