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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시론] 의대 정원 확대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정부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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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와중에 일방 행정 멈추고

복지부는 의료계와 머리 맞대야

중앙일보

한희철 고려대 의대 교수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회장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낯선 코로나19는 모든 면에서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국의 의료시스템이 시험대에 올랐으니 한편으로는 시스템을 점검할 기회이기도 하다.

공공의료를 선도해온 영국이 직면한 위기는 예상 밖의 결과다. 공공의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한국이 비교적 선방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벌어지면서 의료시스템과 의료진의 역량뿐 아니라 지역 문화와 국민 정서 등도 감염병 대응 결과에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유사한 의료시스템을 보유한 나라에서도 대응 성과는 동일하지 않다.

이처럼 한 나라의 의료시스템은 매우 역동적인 요소들이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나라에서 적용 가능한 정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나가는 와중에 국내 의료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를 공공의료 부족과 의료수급 불균형으로 진단한 것 같다. 이에 따라 의대 정원 확대, 특화된 공공 의대 신설 및 추가적 의대 신설이라는 대책을 제시했다. 산적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듯 매우 강하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선언하며 충돌하고 있다. 아직 코로나19 사태는 2차 대유행 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의료계가 코로나19 사태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의료계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지금은 의료계가 코로나19 사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야 마땅하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정책으로 인해 양성되는 의사는 적어도 10년 이후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의료계와 논의할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가진 뒤에 정책을 확정해도 늦지 않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 등 의사 양성과 관련된 정책은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철학에 따라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의료계가 쏟아내는 많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리도 급히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전문가 의견을 잘 청취하겠다던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의학전문대학원제도의 실패와 서남대 의대 폐교(2018년) 등의 사례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진행된 정책의 결과다.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려운 일일수록 전문가들과 깊이 있게 논의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줄여나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국가의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주요 분야에 대해 5년마다 발전계획을 작성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2000년 보건의료법 제정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미래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니 정치권과 사회 각 분야에서 매번 다양한 의견을 쏟아낸다. 기본적인 계획조차 없기 때문에 모두가 혼란스러워 그런 것이다.

따라서 복지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료계와 함께 노력해 제1차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 보건의료 발전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걱정되는 엄중한 때에 의료계가 안정적으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와 함께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함으로써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현명하고 지속가능한 미래 계획을 세우길 간절히 바란다.

한희철 고려대 의대 교수·한국의학교육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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