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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매경이 만난 사람] 美경영학회 국제경영분과 회장 선출된 송재용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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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90년대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자랑하던 소니,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는 2000년대 들어 삼성, 현대자동차 등 한국 브랜드에 서서히 왕좌를 내줬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브랜드로 약진하는 동안 학계에서도 이들의 성공 전략을 연구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급부상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유명한 한국 경영학계 석학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이 수수께끼 같던 문제를 해결한 게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다. 송 교수는 한국 대학교수로는 처음으로 미국경영학회(AOM) 국제경영분과 회장을 맡게 됐다. AOM은 회원이 2만여 명을 넘는 세계 최대 경영학 학술단체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영 관련 연구자가 소속돼 있다. 국제경영분과 회원만 25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의 선거를 통해 회장에 선출된 송 교수는 세계 경영학계에서 일찌감치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인정받아왔다.

논문 인용 횟수(구글 스칼라 기준)가 4400회를 넘긴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해외 경제 언론이 한국 기업에 대해 궁금한 게 있을 때 가장 먼저 전화하는 경영학자다. 그 와중에 제자들도 잘 키워 유학 간 제자들이 미국 와튼스쿨, 영국 런던경영대학 등 글로벌 톱 랭킹 경영대에 교수로 임용됐다. 송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 '랩706'은 글로벌 경영학계가 주목하는 메이저리그 등용문이 됐다.

지금도 서울대 경영대 수강 신청 기간이면 항상 가장 먼저 마감되는 게 송 교수 강의다. 매 학기 최신 기업 정보가 업데이트돼 있는 그의 강의는 몰입도가 최고다. 인기 강의 비결을 묻자 그는 "경영학은 실용 학문이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국내외 경제신문 4개씩은 꼭 읽는다"고 할 정도로 준비가 철저하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시대 기업의 경영 전략부터 글로벌 경제 패권전쟁까지 어떤 질문을 던져도 답변이 명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확산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제조업은 지역적으로 글로벌화 속도가 더뎌지고 지역 내 생산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중심으로 서비스업의 글로벌화는 더 빨라질 것이다.

제조업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을 저렴한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이른바 '저원가 추구형 오프쇼어링'이 매우 활성화됐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부터 중국 중심의 저원가형 오프쇼어링은 퇴조해왔다. 중국의 제조원가가 올라갔고 동시에 중국을 둘러싼 무역분쟁 또한 커지면서 중국 생산 비중을 줄이는 노력이 시작됐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노력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반면 코로나19 덕분에 서비스업은 엄청난 속도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영상회의 업체 줌 등 IT 서비스 업체들을 보라. 코로나19 이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중심 글로벌화가 줄어든다면 다른 나라가 혜택을 보게 된다는 말인가.

▷단기적으로 베트남과 인도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본다. 많은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중국에만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한국 기업들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우리나라에 시행한 각종 보복 조치로 인해 중국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겪으면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당시 2010년 초반에 일본이 표방했던 전략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이었다. 중국에 올인할 게 아니라 중국 외에 다른 생산 파트너를 찾는다는 의미다.

결국 일본이 가장 먼저 시작했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한국이 이어받고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서구 기업들까지 깨닫게 된 것이다. '플러스 원'으로 일본은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찾았고, 한국은 베트남으로 갔다.

그런데 인도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제조업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할 때 저원가도 중요하지만 자체 시장도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사실 인도가 제2의 중국이다. 애플 공장도 동남아와 인도로 정리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가 수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동남아 배후 시장이 있고, 인도는 인도 자체가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공장을 세우는 시장 접근형 오프쇼어링은 강화될 것이다. 자국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 등 장벽이 높아지고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할수록 주요 시장에 생산기지를 만들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력에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미국에 생산기지를 확대하지 않았나. 대륙 간 무역은 줄어들고, 지역 내 무역은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인해 무역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이 리쇼어링을 위한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리쇼어링은 실패한 정책이 될까.

▷시장 접근형 오프쇼어링이 늘어남과 동시에 자국 시장을 겨냥한 리쇼어링도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역분쟁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이 늘고 있었는데 이런 트렌드가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 사실 리쇼어링의 원조는 미국이다.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다 보니 그동안 미국 제조업체들이 너무 심하게 오프쇼어링됐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제조업이 일자리의 근간인데 너무 많이 빠져나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리쇼어링 전략을 폈다. 그 결과 2010년 미국으로 돌아온 공장이 10개였는데, 2018년에는 886개가 됐다. 8년 만에 90배가 늘어났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일자리도 늘어났다. 미국 제조업이 2018년 신규 창출한 고용 중 55%가 유턴 공장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시장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에 지나치게 리쇼어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전히 오프쇼어링이 필요하다. 원가 절감보다 시장 접근형 오프쇼어링이 절실하다. 우리 기업은 중국·베트남에서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했는데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면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 중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지만, 많은 한국 기업은 여전히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그렇다. 그런데도 베트남으로 가고 동남아로 나간다. 가서는 안 되는 공장도 많이 나갔다. 그건 한국이 워낙 규제가 심하고 인건비도 비싸니까 과도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유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취약하다. 유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려면 제대로 줘야 한다. 여기에 근본적으로 규제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센티브를 줘도 안 온다.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인센티브도 과감히 주며 원가 절감을 위한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지원해 들어오게 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이 시장 접근을 위해 오프쇼어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 오프쇼어링과 리쇼어링을 동시에 해야 한다.

코로나로 포퓰리즘 심화…글로벌 학자들과 경계 목소리 낼것
빅데이터·AI·SW플랫폼 등
새로운 성장엔진 떠오를 것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경제위기로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마저 무너지고 있는데, 향후 글로벌 산업 재편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까. 앞으로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은 어떤 산업이 될 것인가.

▷그 답은 이미 주식시장에 나와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 제약바이오 등 관련 기업 주가가 폭등한 게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 않나.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기업들이 말로만 외쳤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하루가 다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말한 서비스업의 글로벌화가 빨라질 것이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기업에서는 사무직의 글로벌화가 빨라지고 있다. 가령 미국 IT 기업 HP는 인사 관련 업무를 일찌감치 글로벌화했다. 온라인으로 입사 원서를 접수하면 인도에 있는 인사관리팀에서 연락이 온다.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아웃소싱도 빨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학술 활동도 위축되고 있는데, AOM 국제경영분과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역할을 할 예정인가.

▷역발상으로 생각해보면 좋은 기회라고 본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경영대학이 강의를 온라인으로 하고, 웨비나(웹+세미나) 형태로 개최한다. 글로벌 학술 커뮤니티인 AOM, 특히 국제경영분과는 글로벌 경영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연간 단위의 웨비나를 구성해볼 생각이다. 특히 학술적 주제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에 심화하는 보호무역주의, 자국중심주의 등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생각이다. 학계 회원들이 각국에서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학계 차원에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목소리를 내자고 생각하고 있다.

▶▶He is…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경영학 석사 △美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 △美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조교수 △연세대 경영대학 조교수 △서울대 경영대학 정교수 △서울대 경영대학 아모레퍼시픽 석학교수 △세계은행 객원 컨설턴트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미주 한인경영학자협회(AKMS) 회장 역임

[한예경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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