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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신세철의 쉬운 경제] 높아지는 불신장벽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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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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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가 선동가들의 작태를 보면 일부러 대립과 갈등을 조성하여 적을 만드는 대가로 더 많은 "적의 적"을 만들어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수작들이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고의로 조성하여 성장잠재력을 무너트리는 이들이야말로 바로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아닌가?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우매하다고 여기는 국민들을 쇼의 소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비친다.

이들의 주장을 보면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이요, 견강부회의 억지를 부리고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흐르는 강물에 빠트린 물건을 찾겠다고 떨어트린 자국을 뱃전에 표시하는 일이다. 정선 아우라지 나루에서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송파나루까지 흘러온 배 밑에서 건져내라고 사공들을 들볶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저보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 주장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짓거리며 전후좌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려는 행각이 아닌가? 문제는 이들이야 말의 성찬을 나누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면 그만이지만, 거짓말에 거짓말이 섞여 퍼지다 보면 이와전와(以訛傳訛)라고 하여 사람들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것이 가짜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다보면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모르게 되는 희극이 벌어지면서 가치관의 전도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살다가 보면 멀쩡했던 사람이 어느 사이에 몽매한 가치관을 가지고 그릇된 신념에 차서 공연히 눈을 부라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주관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선량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리히 프롬 (E Fromm)은 궤변가, 선동가들은 처음에는 대중에게 아부하다가 어느 결에 대중을 우매하게 보며 업신여긴다. 결국에는 스스로 대중보다 더 우매하게 된다고 한다. 우매함을 넘어 마음의 병이 들어 사이코 패스로 변하는 모습도 보인다. 세상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어찌 정상 사고를 한다고 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겸손하였어도 막상 가지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가늠하기 이전에 무엇인가 걱정되고, 피곤한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나 자신부터 불신시대, 불통사회의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리 쓸모없는 의견이라도 상대방이 왜 그런 의견을 제시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자세가 나 자신부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쓸데없는 말잔치에서 보여주는 그칠 줄 모르는 적대감과 불신의 에너지를 생산적 방향으로 전환해 낼 수는 없을까?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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