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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깊고 어둡고 매혹적인 지하세계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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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언더랜드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소소의책·2만8000원



동굴, 빙하, 무덤, 지하 터널. 지표면 아래 공간들이 주는 이미지는 어둡고 축축하고 비밀스럽다.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아래의 공포는 높은 곳에서 느끼는 두려움보다 훨씬 강렬하다. 통상 지상 10미터에 올라가는 것보다 지하 10미터로 내려가는 게 기술적으로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지하세계는 추락, 죽음, 무덤 등과 직결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의미로 특별하고 놀랍다. 경관과 장소, 자연에 관한 깊이있고 아름다운 글들을 써온 저자는 이 책에서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청동기 시대의 매장지에서 북극해 바다 동굴, 그린란드의 빙하와 영국의 깊은 협곡 동굴까지 지구의 심연을 향해 하강한다. 여정은 아슬아슬하고 때로 위험천만하며 숨이 막힌다. 저자는 언더랜드에서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것과 절대 목격하고 싶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기도 하고 수만년 전 최초의 인류가 남겨놓은 숨결의 흔적이며 인간이 묻어놓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다.

부제인 ‘심원의 시간’은 “언더랜드의 연대기”다. “심원의 시간은 시와 분, 연이 아닌 세와 누대라는, 인간의 시간을 하찮게 만드는 단위로 측정된다. 심원의 시간은 돌, 얼음, 종유석, 해저퇴적물, 지질구조판의 이동으로 기록된다.” 저자의 하강은 이러한 거대한 시간의 추적기이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적 사유다. 육체의 모험과 신화, 과학을 넘나드는 여정이 낯설면서도 신비롭고 흥미진진하다. 특히나 땅 아래의 풍경을 묘사하는 섬세함과 생생함,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만나는 풍경의 극적 대비 등이 시적인 문장들로 비범하게 다듬어져 포만감 넘치는 독서의 즐거움을 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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