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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샘 오취리의 발언이 80% 불편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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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의정부고 퍼포먼스에 대한 샘 오취리의 '문화 인식', 어떤 배경과 어떤 문제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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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 /사진=강민석 기자


처음엔 영화나 드라마 장면을 두고 던진 비판이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의정부고가 올해 올린 ‘흑인 상여 문화’를 조명한 졸업사진에 대한 비판이었다. 매년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상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화제를 일으키는 이 학교 학생들이 올해 ‘관짝소년단’이란 이름으로 아프리카 가나의 한 장례식장에서 관을 든 상여꾼들이 운구 도중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린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단순히 ‘흑인 장례식 문화’만 보여주지 않고 흔히 그래왔듯 인종 차별 코드를 첨가해 적지 않은 논란의 여지를 줬을 텐데, 의정부고가 올린 영상은 말 그대로 흑인 장례식 문화를 그대로 비춘 이색 문화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 영상엔 흑인 비하 발언이나, 흑인 춤에 대한 경시나 비웃음, 심지어 우리와 전혀 다른 흑인 장례식에 대한 몰이해의 경계심도 없다. 오히려 죽은 자에 대한 살아있는 자의 의식과 태도를 한 번쯤 곱씹어보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전달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와 유명 방송인이 된 샘 오취리는 이런 장면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적었다.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프다”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행동이다. 제발 하지 말라”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나. 한국에서 이런 행동은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가 주요 발언이다.

듣고 나서 이렇게 반문하고 싶었다. “2020년인데 이런 이색 문화도 조명 못 하면 그게 더 안타깝고 슬프지 않나” “모든 문화는 서로 불편하다” “얼굴 색칠까지 안 하면 어떻게 그 문화의 본질을 탐색하나”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배척이나 금지가 아닌 드러내며 이해하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의 여러 발언들이 합리적 설득력을 갖추려면 학생들의 퍼포먼스에 담긴 악의와 폄훼의 ‘의도’가 전제돼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다르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를 마주 대는 마오리족의 인사법이 다르다고 왜 한국처럼 고개 숙여 인사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기 어려운 것처럼, 춤추는 흑인 장례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 이색 문화를 조명하는데 복장, 표정, 피부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따라 하는 문화가 아닌, 불편하게 할 어떤 의도가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단순히 재연하는 것만으로 ‘비하’나 ‘차별’을 얘기하는 건 문화 다원과 상대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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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패러디해 '흑인 상여 문화'를 조명한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소년단'. /사진=의정부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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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는 지난 2017년 개그맨 홍현희가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흑인 추장 분장을 한 것을 놓고도 “이런 장면 나오면 마음이 아프고 짜증난다”며 “인종에 대한 비하를 없애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일련의 비판 과정을 보면 한국인들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 자체를 그는 불편해 한다. 맥락이나 결과가 아닌, 그 일 자체만으로 마음이 불편한 셈이다. 그 연유를 따라가 보니, 일견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그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지 말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때 더 놀란 게 아주머니의 말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의 차가운 무관심이었어요. 다들 핸드폰만 보고 제 상황에 대해 도와주지 않더라고요.”

샘 오취리는 방송을 시작한 계기도 흑인 차별의 시선을 덜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흑인은 늘 안 좋고 무서운 역할에 놓여 있다”며 “그런 차별에 대한 아픔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가면 나처럼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도 그렇게 당할 것 같아 내가 먼저 나서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흑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샘 오취리는 비정상회담, 대한외국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었는데 그의 예능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세호나 붐처럼 적재적소에 꽂는 센스 있는 멘트나 웃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행동 등에서 거의 ‘한국 예능인’처럼 소화해왔다.

때론 동양인 비하를 상징하는 ‘눈 찢기’ 표정도 보였지만, 이를 대놓고 정색하며 비판하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 순간 그가 ‘악의나 폄훼의 의도’를 지녔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 차별’ 비판 발언으로 문제가 된 지금 시점에 과거 ‘눈 찢기’ 논란이 회자하는 것은 오취리의 상반된 태도를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 쓰일 뿐이다.

방송에선 거의 ‘한국인’처럼 센스와 눈치 100단으로 무장하면서 의정부고의 퍼포먼스에 대해 ‘한국인’ 같지 않게 유연성 떨어지는 발언을 던진 경직되거나 모순된 태도가 지금 비판받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이 불편하게 보이는 것은 최소한 본전은 뽑는 ‘문화 포퓰리즘’을 동원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흑인, 여성, 아이,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나 비주류 계층의 문제를 다룰 때 잘하면 영웅으로 떠오르고, 못해도 본전은 찾는 행위가 그들을 맹목적으로 편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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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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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은 역사적으로 차별받고 가난하고 소외된 민족이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박혀있기에 그들을 다루는 어떤 문제라도 일단 반기를 들면 평균 점수 이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영어 문장으로 올린 글은 이런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한국에선 다른 문화를 조롱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러한 무지는 계속돼선 안 된다"고 썼다.

이미 의정부고의 퍼포먼스는 그 내용을 따지거나 배경을 확인하기 전에 ‘조롱’이라고 단정짓고, 이를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결국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식이다.

똑같은 논리로 우리가 “여성을 처음 만날 땐 가나에선 몸부터 본다”는 그의 농담을 농담처럼 듣지 않고 ‘조롱’이나 성희롱으로 단정 지었는지, 이것은 결국 우리 국민이 ‘무지’해서 그때 지적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지금 우리는 그의 발언이 불편하다고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하는지 되물을 수 있다.

샘 오취리는 “제가 올린 사진과 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죄송하다"며 "학생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의견을 표현하는데 선을 넘어 죄송하다“며 ”더 배우겠다“고 했다.

문화는 배우는 영역이 아니라, 느끼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앞으로 방송에서 보여준 직관의 능력을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펼쳐주길.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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