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피해 주민 “4대강 사업보다 갑작스러운 방류 때문”
너무 많은 비…전국 26곳 올해 최대 시우량 기록 바뀌어
홍종호 서울대 교수 “4대강 사업 재자연화가 답”
경남 창녕군 이방면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의 낙동강 본류 둑이 9일 새벽 터져서, 관계당국이 긴급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낙동강, 왼쪽은 침수된 들판이다. 사진 오른쪽 위에 합천창녕보가 보인다. 최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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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4일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장마가 48일째 이어지면서, 전국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물난리를 겪고 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50명을 넘어섰고, 전국 11개 시·도에서 이재민 6946명이 발생했다. 도로·교량·주택 등 공공·사유시설 1만7879곳에서 피해가 났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발 재해 뉴스가 포털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때아닌 ‘4대강 사업’ 논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역점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던 미래통합당의 정진석 의원,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이 ‘섬진강이 4대강 사업을 안해서 물난리가 났다’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맞는 말인지, 피해 현장과 전문가들을 찾아 의견을 들어봤다.
■ 구례 주민들 “섬진강댐 방류가 제일 큰 원인”
8일 섬진강 범람 피해를 본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지 주민들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져 피해가 컸다’는 주장에 혀를 찼다.
1만여명이 사는 읍내가 침수되는 피해를 본 구례읍 주민들은 10일 ‘섬진강 수해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 만들어 피해 원상회복과 원인 조사 등에 나서기로 했다. 대책위는 “섬진강댐이 8일 오전 6시 반부터 방류를 시작해 10시30분에 방류 가능 최대치인 초당 1700톤을 방류했다”며 “하류 지역 주민은 의식하지 않은 채 불시에 최대치 방류해 피해 커졌다”고 성토했다. 남원 주민들 사이에서도 “섬진강댐에서 미리 수량을 조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강둑이 터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섬진강 수해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의 윤주옥 실무위원은 “지난 60~70년 섬진강에서 이런 일이 없었다. 댐이나 보가 부족해서 수해가 난 게 아니다. 상류의 섬진강댐과 주암댐에서 한꺼번에 수문을 열어버리면 하류 쪽에서 침수를 피할 수 있겠나. 기후변화에 토목과 건설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9일 새벽 무너진 경남 합천창녕보 상류 낙동강 둑을 두고서도 박창근 대한하천학회장(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은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낙동강 둑 붕괴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를 만들면 보를 경계로 상류와 하류에 낙차가 발생하고, 상류 둑에 수압이 집중된다. 합천창녕보 직상류 둑이 수압을 견디지 못했다”고 밝혔다. 염형철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4대강 사업 때문에 섬진강 수해가 컸다는 통합당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다. 오히려 4대강 사업이 국가 물관리의 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낙동강 사례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배수장 인근 낙동강 둑에서 응급 복구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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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에서도 ‘홍수예방 효과 0’
2018년 7월 감사원이 내놓은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실태 점검 및 성과 분석’ 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4대강 사업 홍수 피해 예방 가치는 0원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22조원을 투입해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 등 4대강을 준설하고 16개 대형 보를 설치해 가뭄과 홍수 피해를 예방하겠다며 추진했으나, 지난 2013년과 2018년 두 차례 걸친 감사를 통해서 4대강 사업이 홍수 피해 예방과 연관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명예교수도 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댐으로 막으면 오히려 홍수 피해 발생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라며 “큰비가 내릴 때 평소 강물이 자유롭게 흐르던 상황이라면 물의 양이 어느 정도 불어나도 양쪽의 제방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댐으로 강물을 막아 수위를 높여 놓고 있으면 조금만 물의 양이 불어나도 바로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에 “낙동강 터지고, 영산강 터졌다. 4대강의 홍수예방 효과가 없다는 게 두 차례의 감사로 공식 확인된 사실이다”라며 “4대강 전도사 ‘이재오(미래통합당 상임고문)’ 씨도 사업이 홍수나 가뭄대책이 아니라, 은폐된 대운하 사업이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례적 강수량이 근본 원인 중 하나
예상치를 웃도는 강수량 등 기상이변에 따른 국지성 집중 호우가 물난리의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개 도시는 시간당 50~70㎜의 강수량을 감당하는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강수량은 배수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 기상청이 집계한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남이섬 116㎜(3일 오전 10시17분) △일죽 104㎜(2일 오전 7시57분) △대전 문화동 102.5㎜(7월30일 새벽 5시18분) 이었다.
기상청의 ‘1시간 최다강수량 순위’(8월9일 현재)를 보면, 전국 관측지점 576곳 가운데 26곳이 이번 호우 때문에 1위 기록이 바뀌었다. 1~5위 강수량 기록이 바뀐 곳은 118곳에 달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118곳 가운데 59곳은 8월 들어 내린 강수량이 순위를 뒤집을 만큼 열흘 새 많은 비가 왔다”고 설명했다. 정선화 환경부 대변인은 “기후위기에 따라 이상 고온, 집중 호우 등 자연환경의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치수정책·시설 점검 계기로” 지적도
시공·운영 문제가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공학과 교수는 “섬진강도 4대강 사업 때 보 건설이나 준설만 안 했지 제방·저류지 사업 등은 했다. 섬진강은 100년 빈도의 호우에 대비해 제방을 설계하는 데 이번이 80년에 한 번 정도 날 호우라면 지금 정도 시설로 방어돼야 했었다. 시공이나 운용 등의 문제를 짚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진걸 동신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4대강 사업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하천에 예산을 투입하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번엔 너무 많은 비가 왔지만 3만개가 넘는 소하천을 포함해 국가·지방 하천을 계획대로 정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4대강 재자연화 정책 등 하천 자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계획대로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을 추진했더라면 적어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보는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댐이다. 강 본류 중간에 설치된 이들 보가 물 흐름을 막으면서 댐의 홍수조절 기능이 크게 떨어뜨렸다. 보를 해체하는 등 하천 유역을 자연화해야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최예린·송인걸·안관옥·최상원·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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