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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투자자 4000명 묶인 '블루문펀드', 대표 잠적 전 법인예치금 모두 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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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블루문펀드’ 대표에… 투자금 570억여원 묶여
경찰 "가족들, 실종 신고 몇시간 만에 취소" 해프닝도
법인 예치계좌 ‘0원’… 개인 예치금 3억원은 반환 검토
"현행법상 원리금수취권한 대행 의무 없어 회수·반환 요원"

동산(動産) 담보 전문 P2P(peer to peer·개인간 대출) 업체 ‘블루문펀드’ 김모(42) 대표가 돌연 잠적해 투자금 570억여원 가량이 묶인 가운데, 대표의 잠적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 블루문펀드 측이 법인 예치계좌에 남아 있던 모든 돈을 출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가족들마저 김 대표의 잠적 사실을 몰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예치기관 중개 업체 ‘페이게이트’ 측은 이상징후를 파악한 직후 블루문펀드 관련 출금 계좌를 막았고, 현재 개인 예치금에 대해선 반환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비즈

동산 담보 전문 P2P업체 블루문펀드의 김모 대표. /블루문펀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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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예치금 출금 → 폐업 통보 → 가족 실종 신고

10일 업계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5일까지 여름휴가를 낸 뒤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잠적했다. 복귀 예정일인 지난 6일 회사 측은 "회사 사정을 이유로 운영이 불가하니 전 직원을 권고사직 처리한다"며 "그동안 수고한 직원들의 급여는 정산해 입금시켜줄테니 당장 퇴근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블루문펀드 투자자는 총 4000명이며 대출잔액은 576억6030만원이다. P2P 업체는 투자자의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어서 통상 대출잔액과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엇비슷하다.

김 대표의 잠적 사실은 그의 가족들조차 미리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직원 공지 내용을 접한 김 대표의 가족은 같은날 오후 12시쯤 거주지 인근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신고 몇시간 만에 소재 파악이 완료돼 가족들에게 안내했고, 이를 들은 가족들은 신고를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가 해외로 출국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경찰은 그의 소재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김 대표가 사라지기 전 수상한 행보도 눈에 띈다. P2P업체와 은행 등 예치기관을 연결하는 중개 업체 페이게이트에 따르면, 대표 잠적이 알려지기 직전인 이달 6일 블루문펀드 측은 법인 예치계좌에 남아있던 모든 돈을 출금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법인 예치계좌는 상환금이나 이에 대한 이자가 들어오거나, 향후 투자를 위해 준비한 자금이 놓여 있는 곳"이라며 "잠적 전날 이런 돈을 한번에 빼갔다는 게 정상적인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페이게이트는 법인 예치계좌에서 한번에 빠져나간 금액의 규모를 파악 중이다.

페이게이트는 법인 예치계좌 출금은 막을 수 없었으나, 이상 징후를 포착한 이후 이튿날인 7일 오전 각 은행 모계좌에 들어있는 개인 예치금에 대해서는 출금을 차단했다. 현재 투자자 700여명의 3억원 정도가 예치계좌에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페이게이트 관계자는 "대출이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품의 투자금 3억원에 대해서는 우선 반환 절차에 돌입할지 여부를 논의 중이나 아직까지 수사당국 등의 협조 요청이 없어 고심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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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한 P2P카페에 올라온 ‘블루문펀드 전 직원 입장 표명의 글’의 일부. /네이버 카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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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실행된 투자금, 회수 장담 못해

개인 예치금을 반환한 비슷한 사례로는 최근 돌연 영업중단을 선언한 P2P업체 ‘넥펀’이 있다. 넥펀은 250억원가량의 투자금이 묶여있다. 넥펀 대주주 넥스리치홀딩스 대표의 수사와 압수수색으로 인해 지난달 경찰은 페이게이트 측에 "넥펀의 미투자 예치금에 대한 반환을 진행하라"는 협조 공문을 전달했고, 총 1600명 대상자(12억5000만원 규모) 중 반환 신청서를 회신한 800명에게 순차적으로 지난 3주간 1~3차에 걸쳐 투자금 8억5000만원을 반환했다.

대출이 이미 실행된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P2P업체를 대신해 차주에게 가지는 채권을 행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나 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또 현행법상 P2P업체가 영업을 중단하면 원리금 수취권한을 대행할 기관을 선정해둘 의무도 없다. 오는 27일 시행될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에는 "등록취소, 해산결의, 파산선고 등 영업중단 등에 대비해 원리금 상환 배분 업무에 관한 계획 등 이용자 보호에 관한 사항을 법무법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등 공정하고 투명한 청산업무 처리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부 P2P업체가 "법무법인과 ‘부도·청산 등으로 영업이 중단되는 경우 채권 추심 및 상환금 배분 업무 등을 위탁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며 신뢰성이 있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이 역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한 P2P 전문 변호사는 "유사시에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업무협약을 맺은 것일뿐"이라며 "MOU에 따라 각 사가 실제 계약을 맺었다면 위탁 업무를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넥펀 역시 과거 법무법인 주원과 MOU를 맺었지만, 현재 주원 측이 넥펀의 투자금 회수와 관련해 진행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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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문펀드 홈페이지와 연계된 재고 창고의 실시간 CC(폐쇄회로)TV 모습. 불안한 투자자들은 CCTV를 통해 담보로 잡힌 물품이 빼돌려지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있다. /독자 제공



P2P업체가 파산 신청을 해 법원이 파산 선고를 내린다면, 파산관재인이 선임돼 회사 자산을 채권자에게 배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남은 회사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어서 투자금의 얼마만큼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민사소송을 통해 보상 받는 방법도 있으나, 소송비용 때문에 소액을 투자한 투자자는 오히려 투자금보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 P2P 전문 변호사는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사기 사건의 경우 피해금액의 20% 미만을 돌려 받는다"라고 했다.

이미 법적 대응에 착수한 블루문펀드 투자자들도 있다. 블루문펀드의 경우 다른 P2P업체에 비해 고액 단위 투자자들이 많아, 최대 5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묶인 법인 투자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들은 개인적으로 블루문펀드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2018년 설립된 블루문펀드는 온라인 유통업자 등을 상대로 분유·수산물·마스크팩·커피 선물세트·골프웨어 등 재고를 담보로 잡은 뒤 투자자 자금을 모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영업해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블루문펀드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자금 유용·투자금 돌려막기 등의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4개월간 버젓이 영업을 이어오다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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