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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글로벌포커스] 리더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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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은 8월 초 500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와 16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플로리다 등 몇몇 주에서는 일일 최대 확진자와 최대 사망자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고 시설을 가진 병원과 의사진, 최고의 전염병 예측과 방역대책 전문가들이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렇게 높은 확진자 수와 확진자 비율은 몇 주 후 학교 개학을 감안할 때 우려를 넘어 패닉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코로나19 관련 연구는 엄청난 열정과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많이 보도됐다시피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에 대한 개발과 임상시험은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효과적인 방역 정책을 펼치는 데 도움을 주는 코로나19 환자 수와 병원의 이용률 예측모델 연구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현재 MIT OR센터, 워싱턴대 IMHE, 컬럼비아대 보건대학원 등 약 30개 예측모델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델 중 상당수는 전통적인 SEIR전염병 예측모델에서 나아가 사람들의 이동을 빅데이터로 취합하는 세이프그래프(SafeGraph)와 비행기록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접목해 미국 전체를 3007개 구역으로 나눠 상세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는 30개 모델의 예측을 바탕으로 상세한 정책을 펼칠 기술적인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은 현재까지 인구의 18%인 6000만건의 검사를 했다. 한국이 인구의 3%를 검사하고 얻어낸 성과에 비해 너무 형편없다. 이는 검사 결과를 환자와 의료진에게 빠르게 전달하는 과제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국 많은 지역의 경우 평균 3~4일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약 10%의 환자는 열흘 이상을 기다린다. 이러한 느린 검사는 검사·확진 판정·격리라는 기본적인 방역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테스트 숫자는 지난 3월에 비해 늘었지만, 걸리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검사 숫자에만 관심을 두고 사설 검사 회사들에 의존하며 근본적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3월부터 제안된 방법이 그룹(pooled) 테스트다. 이 방법은 보통 한 키트로 한 사람을 테스트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10~20명의 샘플을 하나로 섞어서 한번에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 혼합샘플이 음성이면, 샘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음성이라는 의미다. 만일 이 혼합샘플이 양성으로 나온다면, 그때는 이 샘플에 들어 있던 모든 사람을 개별적으로 테스트한다. 확진자 비율이 아주 높지 않을 때 이러한 방법을 적용했으면, 굉장히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구 중 1%의 확진자가 있는 경우 이러한 그룹 테스트를 이용하면 100명을 평균 20개 미만의 키트로 테스트할 수 있다. 이것도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검사를 많이 해서 환자가 많다고 믿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지와 과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에 있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상황을 파악한 후에 시나리오별로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당장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근시안적인 정책 탓이다. 4월 이후로 그 어떤 예측모델과 전문가그룹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정부기관인 미국국립의료원(NIH) 등의 전문가 말을 무시하고 전문가가 받는 신뢰조차 시기하며 폄훼한다. 이미 트럼프의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전문가가 사라진 지 몇 주 됐다. 팩트와 전문성이 배제된 정책은 수많은 사망자와 2분기 국내총생산(GDP) 30% 감소라는 결과를 남겼을 뿐이다.

올바른 전문가는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리더가 그런 말이 듣기 싫어 미사여구를 하는 사람만 찾으면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안현수 미시간 경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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