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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나는 `청주 함씨` 시조…충청도는 나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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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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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차 여행 같습니다. 정차하는 역이 많고, 행로가 자주 바뀌고,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그런 여행 말입니다. 이 여행은 기쁨,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이별로 가득합니다. 기차에서 만난 승객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간다면, 서로 사랑하고 도와준다면, 그건 참 좋은 여행이 될 겁니다."

1960년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함제도 신부(88·제럴드 해먼드)가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았다. 12일 기자들과 만난 함 신부는 자신의 삶을 '좋은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선교사의 여행'에는 선교사로 울고 웃으며 보낸 60년 세월이 담겨 있다.

193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함 신부는 얼마 전 선종한 장익 주교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신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 인연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제품을 받자마자 한국행을 자원한다. "1960년 4월 17일에 한국 임명을 통보받았어요. 한국으로 가게 됐다고 가족에게 알렸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울었어요. "도대체 왜 거길 가냐"고 하셨죠. 한국 하면 전쟁만 생각나던 시절이었어요. 한국에 올 때 항공편이 없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화물선을 타고 알래스카, 시베리아, 일본 홋카이도·요코하마·고베 등을 들러 부산 거쳐 인천 월미도로 들어왔어요. 태평양을 반 바퀴 돌아 꼬박 3주가 걸렸죠."

한국에 온 함 신부는 청주교구 일선 사제로 30년 동안 약자들 편에 섰다. 자신을 '청주 함씨' 시조라고 소개하고 충청도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는 수동본당, 괴산본당 신부를 거쳐 공군사관학교 교수와 시각장애인특수학교인 충주 성모학교 교장을 지냈다. 한국이 아직 가난과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을 그는 가슴 아프게 회상한다. "그 시절 저는 장례식이 제일 힘들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어요. 아이가 넷이나 되는 여인이 '남편은 죽었고 쌀독은 비었어요. 신부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자"고 말했지만 앞이 캄캄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요."

함 신부는 그렇게 조금씩 희망을 심어 나갔다. 성당에 쌀을 한 숟가락씩 넣는 주머니를 달아 놓고 가득 차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이념을 뛰어넘어 고통과 연대하는 것이 선교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함 신부는 누가 '진보냐 보수냐' 질문하면 "나는 가톨릭요"하고 답한다. 그는 인도적인 봉사에 이념이나 정파가 끼어들어 가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함 신부는 1989년 한국지부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60여 차례 방북해 인도적 사업을 주도했다. 특히 결핵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북한에 간 건 가톨릭을 선교하려고 간 게 아니었어요. 아픈 사람들을 돕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갔어요.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처럼 따뜻한 정이 있고 자존심도 강해요. 그 사람들에게 나중에 기회 되면 서울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꼭 찾아갈 게요. 그런데 우리가 먹을 건 우리가 챙겨갈게요'라고 대답하더군요. 남북한 사람들이 조금만 더 이해심을 갖고 서로를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함 신부는 시종일관 천진난만했다. "나는 뚱뚱하기 때문에 죽으면 성직자 묘지 2개가 필요하다"며 농담을 던지더니 "한국인들과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고 좋아서 100% 한국인이 되려고 했지만 내가 너무 부족했다"며 겸손하게 웃었다. 함 신부는 자신의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서 "나 자신의 영광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건 없는 봉사가 나의 사명이었고, 어떤 가톨릭 선교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면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함 신부의 사제 수품 60주년 기념 미사는 13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열린다. 그의 인자한 미소가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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