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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백브리핑] 금융사들이 권고 따르지 않자… 강제화 방안 찾는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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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수퍼 갑(甲)'이라고요? 옛말입니다. 요즘 금융회사가 우리 말을 듣긴 합니까."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요즘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최근 금융사들이 금감원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체면을 구긴 일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죠. 금감원이 숙원 사업으로 진행해온 '키코 재배상' 권고는 금융사 6곳 가운데 5곳이 거부했습니다. 또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에 '투자금 전액 반환' 권고를 했지만, 아직 금융사들은 묵묵부답입니다. 과거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속이 상한 금감원은 "말이 안 통하면 회초리를 들겠다"는 입장입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편면적 구속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금감원 분쟁조정안은 단순한 '권고'일 뿐입니다. 금융사·소비자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만일 어느 한쪽이 거부하면 권고가 무효가 됩니다. 그런데 금감원이 이를 고쳐 소비자는 금감원 권고를 거부할 수 있어도, 금융사는 무조건 따르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권고에 사실상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금감원은 소액 사건에 한정해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독일·영국·일본 등 주요국의 금융 관련 분쟁조정기구도 편면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사법부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 밖에도 금감원은 코로나 사태 같은 비상시에 은행 배당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앞서 지난 4월 윤 원장이 "배당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지만, 하나금융그룹이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게 계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말발'이 안 먹히는 금감원의 고충이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말로 그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보다는, 왜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권고를 안 따르는지 성찰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호랑이 선생님' 수업이라고 더 집중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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