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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유행 따르지 않고 10년간 지켜온 우직한 정성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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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챔프커피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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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들이 모여 있는 이태원 퀴논길 인근에서 저녁을 먹은 후 조금 걸어 챔프커피에 도착했다. 퀴논길은 이태원역 뒤편에 있는 용산구 보광로59길 일대 거리로 2016년 용산구와 베트남 꾸이년시의 우호 교류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거리다. 챔프커피는 퀴논길이라는 이름이 지정되기 한참 전인 2009년부터 이곳에서 꾸준하게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카페다. 화려하지 않아도 동네 감성을 잘 담아내는 사랑방 같은 카페.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이태원을 좀 더 동네 주민처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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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카페들처럼 특정 콘셉트를 잡아 인테리어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곳이다. 부드러운 색감의 조명이 있는 짙은 남색의 공간. 무심코 툭툭 놓은 박스들과도 어우러지며, 언제 들어가도 부담이 없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인은 이곳이 뉴욕 뒷골목에서 만났던 카페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며 좋아했다.

따뜻한 챔프커피와 무주 반딧불 사과주스를 한 잔씩 주문했다. 커피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던 챔프쿠키도 함께. 바리스타는 커피에 사용될 원두를 골라달라고 했다. 산미가 있다는 콜롬비아 엘 레크레오 원두를 선택했다.

이곳에서 파는 챔프커피는 플랫화이트와 유사한데, 호주식 정통 플랫화이트와는 조금 달랐다. 호주식 플랫화이트가 한국에 퍼지기 이전부터 이곳에서는 챔프만의 플랫화이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인근 맛집에서 배불리 밥을 먹고 나왔을 때, 라테를 마시기는 배가 불러 부담스러울 때 가볍게 입가심하기 좋은 메뉴였다.

혹시 이곳을 운영하는 하동경 대표가 호주에서 커피를 배워왔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연히 8온스 컵이 생긴 어느 날. 동일한 양의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조금 덜 넣어 커피를 만들었는데, 맛있어서 고정 메뉴가 됐다고 했다. 호주식 플랫화이트와는 조금 다른 이 커피를 '챔프의 커피'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 이름도 '챔프커피'로 지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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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커피와 사과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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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커피에는 일반 카페에 잘 없는 독특한 메뉴가 많았다. 차를 우려 만든 시럽을 사용한 퀸즈커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법한 달콤하고 고소한 이태원커피. 베네수엘라산 빈투바 초콜릿을 사용해 풍미가 일품인 모카 등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만든 챔프만의 음료가 많았다.

어떻게 커피를 배우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맏형인 하 대표는 웃으며 커피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원래 동대문에서 의류 관련 사업을 했어요.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둬야 했고, 회사에 다니던 동생과 함께 카페를 시작하게 됐죠.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동생은 이미 로스팅 등 커피를 배우고 있었던 터라 제게 큰 힘이 돼 줬어요. 처음부터 챔프커피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강남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했지요. 프랜차이즈이긴 해도 커피 로스팅은 동생이 직접 했어요. 처음에는 강남 매장에서 로스팅했는데, 민원이 들어온 거예요. 하는 수 없이 로스팅을 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알아보게 됐죠. 공간을 이리저리 찾던 중 이태원 우사단에 위치한 이불집이 있던 곳에 자리를 잡게 됐어요. 거긴 임차료가 정말 저렴했거든요."

강남에서 운영했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정말 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밤낮없이 24시간 일을 해야 하니 건강에 더 무리가 된 거예요. 결국 동생과 의논하고 프랜차이즈 강남 매장은 접기로 했어요. 로스팅 공방인 우사단만 남게 됐죠. 프랜차이즈를 그만두긴 했지만 동생은 우사단에서 계속 커피를 볶았어요. 지나가다 원두를 사 가시는 손님들께서 여기서도 커피를 판매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챔프커피라는 이름으로 카페가 만들어지게 됐지요."

하 대표는 챔프라는 이름에 "비록 아직 최고는 아니지만 우직하게 최고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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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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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픈한 챔프커피는 우사단이 1호점, 이곳 이태원이 2호점, 그리고 을지로가 3호점이 됐고, 현재는 로스팅 납품 물량이 많아져 부천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 대표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커피를 시작하다 보니 저는 따로 커피를 배우고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수많은 카페를 가서 보고 마시기로 했어요. 어떤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커피를 어떻게 내리는지 보고 끊임없이 연구했죠. 그때는 하루에 300잔쯤 마셨던 것 같아요."

귀를 의심했다. "한 달에 300잔이 아니고요?"라고 되묻는 내게 하 대표는 '하루'였다고 이야기했다. 현장 실습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커피를 구체화했고, 대중이 좋아하는 맛의 커피를 찾아 나갔다.

다른 곳에서 이 집 메뉴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배워서 만든 메뉴'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먹고 마시며 고민해서 만들어낸 메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메뉴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다. 이 동네에 오면 수많은 카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이 집을 찾게 되는 이유가, 누군가의 메뉴가 아닌 자신들만의 메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삼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이 카페가 더욱 깊이 뿌리를 내려 대를 이어가는 가업이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하 대표(큰형)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형의 건강이 악화됐을 때 함께 형과 카페를 하겠다고 나선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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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챔프커피 제2작업실 가는 길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이 없었겠느냐마는 싫은 내색 없이 서로를 위하고 다독이며 어려움을 헤쳐나간 사람들이었다. 챔프는 가족 같은 회사를 넘어 정말 가족이 모여 만든 회사였기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는 그곳만의 고유한 기술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구성원들이 진정 한마음으로 합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 소박해 보이는 챔프커피는 두 가지가 모두 잘 이뤄지고 있었다. 10년 동안 단단하게 뿌리내린 이곳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해졌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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