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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모든 것이 잘 되어있어! “Alles in Ordn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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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이 되어 있는 상태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과연 어떤 상태가 ‘가장 잘 정돈 된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독일에서 “Alles in Ordnung” 이라는 말은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어”, 혹은 ”완벽해” 정도의 의미를 갖는 표현이다. 영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Everything is alright”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문장에서 쓰인 ‘Ordnung’은 정리, 정돈, 규칙, 단정함, 이라는 뜻을 지닌다. ‘Ordnung’에서 파생된 형용사, ‘Ordentlich’는 정리 정돈을 잘 하는, 질서 정연한 현상, 단정한 모습, 누구나 보아도 바람직한 상태를 나타낸다. 만약 학생이 옷을 깨끗하게 입고, 글씨도 정갈하게 쓰고, 태도도 올바르게 한다면 제일 바람직한 ‘Ordentlich’한 모습일거다. 스스로의 단정함이 규칙이나 질서를 잘 지키는 등의 사회적인 행동양식으로도 확장되어 말할 수 있는 단어이다.

독일 공립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키우기 때문일까, ‘Ordentlich’한 상태를 독일 사회에서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다. ‘질서와 규칙을 잘 따르는 단정한’ 아이는 타의 모범이 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부모 역시 아이에게 바람직한 태도를 유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또한 독일인의 성격적 전형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 몇 개를 선택하라면 여럿 중 이 단어를 꼽을 정도로, 질서 정연한 단정함이 상당히 독일 사회 및 개인의 몸에 배어 있음을 자주 느낀다. 공공시설에서 줄을 설 때도, 집안일을 할 때에도, 약속을 정할 때에도, 파티를 준비할 때도, 모든 것은 순서에 맞게, 논리적으로 보여서 그것이 원래부터 본연의 이치에 맞는 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내가 목격하는 수 많은 ‘정돈되어 있는 단정한’ 장면들이 마치 사람들이 가장 가치로 삼고 싶어하는 ‘옳은 행동의 양식’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사적인 영역에서의 단정함이 관계의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의 사적인 동기가 마치 인위적인 의도를 갖고 평가되는 느낌을 주고 받을 때가 많다.

한 예로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은 아주 사적인 영역에도 질서 정연한 단정한 태도가 잘 드러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왜 이 사람은 정원을 이 정도까지 가꾸는 걸까?” 하는 물음이 생길 정도로 매우 잘 정돈된 정원을 만나게 된다. 정원 주인의 개인의 취향이나 순수한 노력으로 완성된 완전한 상태의 질서 정연하고 단정한 정원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어쩌면 인위적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 적도 있다. 독일에서는 각자의 꽃과 나무를 잘 정돈하는 일이 법으로도 정해져 있는 만큼, 서로가 지켜야 할 사회적 규칙이다. 단순히 초록이 시들지 않을 부지런함이 아니라, 잘 정돈된 상태로 가꾸어야 한다. 물론 가끔 개인의 취향만으로도 각자의 정원은 충분히 아름답지만, 각각의 질서 있는 단정함이 골목 전체의 정돈된 정원 안에서 알맞게 균형을 갖춰야 한다. 더욱 훌륭하게 보여지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만약, 정원이 없다면 발코니를 휑하게 비워두어서는 안 된다. 낮은 높이의 다세대 건물이라면, 각각의 집 발코니의 외관이 골목의 다른 건물들의 그것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발코니에 화분을 놓아두는 곳이 있으면, 꽃을 놓아두든지 해서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에게 비난을 받고, 심한 경우에는 벌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질서 있는 단정한 상태가 ‘옳은 상태’이고, 또한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임을 말하는 듯 하다.

개인적인 영역이 사회적 관계의 그물 안에서 평가 되면, 개인의 행동이 마치 ‘타의에 의한 자의’와 같이 여겨질 때가 있다. 정돈된 단정한 상태가 순수한 개인의 특성이 아닌, 강박되고 요구되는 현상처럼 보인다. 그것은 나의 선의가 마치 잘 재단된 어떠한 의도된 계획 같기도 하고, 한 개인의 성격이 특정한 ‘전형적 인물’로 평가 받는 것이다. 잘 정돈되고 단정한 사람은 미래에 사회적 규칙도 잘 지킬 바람직한 사람이 되는 암묵적 규칙은 사회적으로 전체적인 어떠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내가 독일에서 받는 인상,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일 지 모르지만, 이러한 독일인들의 특별한 ‘Ordentlich’ 한 태도는 그들의 대표적인 전형적 특징이라고 본다. 깔끔한 집안 내부, 학교에서의 규칙 준수, 이메일을 쓰는 요령, 어딘가 틀에 맞춰진, 각이 맞아 보이는 삶의 태도를 마주할 때면 이성적인 차가움을 느낄 때가 많다. 더욱이 코로나 펜데믹으로 새로운 규칙과 질서가 생겨났고, 이를 많은 이들은 놀랄 정도로 잘 따른다. 철저한 마스크 착용이라든지, 바닥의 거리 두기 선에 맞춰 선 줄이라든지, 생활 방역 규칙 준수 등, 주변의 모든 것이 “Alles in Ordnung” 해 보인다.

어쩌면 모든 것이 정확한 위치에,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은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 모두 반듯하게, 질서 정연한 상태가 되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하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상태일까? 꽃과 나무를 사랑해서 자기만의 정원을 가꾼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며,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많은 장면들을 속에서 가끔 서늘하게 느껴지는 인간성을 보며 과연 이것이 긍정적인 ‘Ordunung’ 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우리에게는‘여지’라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정확히 재단된 삶과 행동의 중간 중간에는 쉼이 필요하고, 숨을 내쉴 틈이 필요하다. 조금 틀려도 된다. 단정한 모양이 제일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잘 정돈된 모양이 가장 훌륭한 것은 아니기에, 조금 틈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글씨를 조금 비뚤게 써도 칭찬해줄 수 있는 배려라든지, 약간은 집이 지저분해도 사람 사는 느낌이 들 여지 말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으리라는 법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적당함에 가까운 모양으로 살아볼 뿐이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지루해하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인 아이에게 지레 “Sitz! Ordentlich!”(앉아, 제대로!) 라고 소리치는 부모를 보면서 생각했다. 본래 아이의 제자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고.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다는 이유로 누가 아이를 의자에 꼼짝없이 앉힐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사과들이 진열된 선반에서 개 중 하나가 아주 조금 튀어 나와 있다고 해서 어느 누가 사과를 놓은 사람을 비난할 것인가? 아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박소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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