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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뉴스분석] "외부도움 안 받는다" 선 그은 김정은, 자력갱생 돌파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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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치국 회의 열어 수해 피해 점검
경제 총괄 내각총리는 김덕훈으로 교체
대북 지원 의지 통일부 난감
한국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최근의 수해 상황을 점검하며 발언하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14일 공개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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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선 외부 도움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북한 경제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해 피해 등 '3중고'에 직면했지만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대북 지원사업 추진 의사를 연일 피력한 우리 정부의 스탠스도 애매하게 됐다.

수해 피해 심각하지만… '자력갱생'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16차 정치국회의를 열어 수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북한 당국은 이달 내내 쏟아진 기록적 폭우로 강원도와 황해북도, 황해남도, 개성 등 전국의 농경지 3만9,296정보(약 390㎢), 주택 1만6,680가구, 공공건물 630여 동이 침수됐다고 밝혔다. 도로와 다리, 철길 곳곳이 끊어지고 일부 발전소 댐도 붕괴된 것으로 전해졌다. 침수된 농경지만 여의도 면적(2.9㎢)의 134배에 달해 '최악의 홍수' 피해가 있었던 2007년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수해와 코로나19를 '두 개의 위기ㆍ두 개의 도전'이라고 명명하면서도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세계적인 악성비루스(코로나19) 전파 상황이 악화되는 만큼 홍수 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 지원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방역사업을 엄격히 진행해 위기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 정책이 우선이니, 유엔(UN)이나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등 국제기구는 물론 남측 민간단체 등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사실상 거부한다는 얘기다. 지원물자 반입 시 코로나19 유입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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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을 방문해 전략물자와 식량을 풀어 수재민 지원에 쓰도록 지시하는 모습을 7일 조선중앙TV가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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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외부 지원 거절한 까닭


대신 김 위원장은 코로나19와 수해 피해 등으로 어려워진 경제난 해소를 위해 내부 쇄신에 돌입했다. '경제사령탑'인 내각 총리를 김재룡에서 김덕훈으로 교체한 게 대표적이다. 김재룡은 당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강조한 원산ㆍ갈마 관광지구나 평양종합병원 건설 등 각종 경제 정책 성과가 없자, 당 창건 75주년(10월10일)을 앞두고 인사를 통한 분위기 전환에 나선 것이다. 김덕훈 신임 총리는 59세로 내각 부총리와 당 경제부장 등을 두루 거친 경제통이다.

악화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애민 행보'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정치국 회의에서 "집과 가산을 잃은 수재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지도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수해 복구 기한도 당 창건 기념일로 못 박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수해와 코로나19에 발빠르게 대처해 민심 이반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수해 지원을 위해 전쟁 대비용 예비 물자까지 푼 만큼 자체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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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남북교류 재개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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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걸어잠근 北… 속타는 정부


남북관계 돌파구를 찾던 정부는 난감해졌다. 남북 물물교환ㆍ북한 개별관광 등의 교류협력사업과 코로나19 방역ㆍ수해 복구 지원 등의 인도적 협력 제안에 대해 당장은 북측이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북측에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북한 개별관광 허용 등 남북교류 재개를 위한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살펴야 겠지만 하루 빨리 북측과 대화와 협력을 시작하길 희망한다"며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 보고 싶은 것 만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고려하지만, 정부의 남북 협력 재개의지가 강하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외부지원 거부'는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뜻인 만큼 코로나19 상황이 풀리면 반전될 여지가 있다"며 "북한의 수용 방식을 배려해 물밑 접촉에 힘 쓸 때"라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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