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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몸소 부딪쳐 얻은 낯선 세계의 기록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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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길보라 지음
문학동네 | 276쪽 | 1만3500원

“이 동작은 ‘맛있다’라는 뜻의 수어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로부터 수어를 배웠고 세상으로부터 음성언어를 배웠죠.”

이쯤에서 놀라는 반응이 나와야 했다. 그러나 청중은 그저 태연했다. “저는 열여덟 살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8개월간 여행을 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코다(CODA)로서의 정체성이나 학교 밖에서 보낸 청소년기의 경험은 더 이상 놀랍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막 떠나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곳에서 이길보라는 더 이상 ‘비정상’이 아니었다.

독립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이길보라가 암스테르담의 필름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만난 낯선 세계와 그곳에서 확장된 배움에 대한 기록이다. 청소년기부터 학교 밖에서 삶을 배우며 스스로를 ‘로드스쿨러(road schooler)’로 칭한 저자는 그의 부모가 그랬듯, “모르니까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방법으로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간다.

저자가 겪은 암스테르담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곳이었다. 노브라, 노메이크업으로 학교에 가도 마음이 편하다. 직급이나 나이, 성별에 따른 위계는 없다. 학장이나 학생이나 모두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남자들은 당연하게 육아와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물론 이곳에도 구분짓기와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던 ‘정상·비정상’의 경계는 한껏 흐려져 있다.

“괜찮아, 경험.” 아버지의 문장을 되새기며 저자가 몸소 부딪쳐 얻은 ‘낯선 경험’이 주는 재미,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그득한 책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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