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밀리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선거에 쏟아부으며 배수진을 쳤다.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은 코로나19 사태, 경제위기, 인종갈등 등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을 집중 부각하며 ‘반트럼프’ 깃발 아래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11월 3일(현지시간) 치러질 승부의 향배지만,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부 세력의 개입 시도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고, 코로나19가 불러온 장애물도 수두룩하다. 투표가 파행을 겪거나 개표가 지연될 경우 상당 기간 승자를 가리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18일(현지시간) 자신의 주요 공약인 멕시코와의 국경장벽이 건설되고 있는 애리조나주 유마를 방문해 연설하면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짓으로 답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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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개표 방해 노린 외부 세력의 시도
외부 세력 개입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돕기 위해 온라인에서 여론 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은 미연방수사국(FBI) 및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로 증명됐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된 이란이나 중국도 대선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미국 정보기관인 국가방첩안보센터(NCSC)의 윌리엄 에바니나 소장은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외국의 많은 활동가는 누가 대선에서 이길지에 대한 선호를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우선 중국과 러시아, 이란의 지속적이고 잠재적인 활동에 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 러시아, 이란이 틱톡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넘어 선거를 관리하는 주정부 웹사이트에 접근해 자료 수집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 정부와 별개로 해커들의 공격도 예상된다. 투·개표를 위한 컴퓨터 시스템에 악성 소프트웨어를 몰래 심은 다음 투·개표 방해를 위협해 금품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FBI와 국토안보부는 주정부에 랜섬웨어(컴퓨터 시스템을 마비시켜 접근을 제한시킨 다음 돈을 요구하기 위한 악성 소프트웨어) 관련 경고를 수시로 내리고 있다. 미 법무부의 애덤 히키 검사는 AP통신에 “투표결과를 바꾸는 것보다 선거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강타한 코로나19는 다른 유형의 난관을 불러왔다. 선거를 관리하는 주정부들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재원과 인력,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년층이 투·개표 업무에 많이 투입됐다. 미국 선거지원위원회(EAC)에 따르면 2018년 중간선거 당시 투표소 인력의 58%가 61세 이상이었다. 40세 이하 인력은 16%에 불과했다. 코로나19는 노년층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투·개표 업무에 적극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메릴랜드주 선거 당국의 데이비드 케레이스는 ‘폴리티코’에 “우리는 조기투표와 선거일 당일 업무 처리를 위해 3만9870명이 필요한데 확보된 인력은 턱없이 모자른다”고 밝혔다.
인력이 모자라면 투표소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투표소가 줄어들면 유권자들의 불편이 늘어난다. 투표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투표소를 줄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예비선거를 진행한 조지아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져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큰 비난을 받았다. 교사·대학생 등 젊은이들을 대체 인력으로 모집한다 해도 단기간에 숙련시키기가 쉽지 않다. 업무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대안으로 등장한 우편투표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집으로 배달된 투표용지에 기표한 다음 우편으로 보내는 우편투표는 대인 접촉 없이 투표를 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투표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각 주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우편투표 제도를 확대하면서 전체 유권자의 76%에 달하는 1억5800만명에게 우편투표를 할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2016년 대선보다 약 2배 이상 많은 8000만명가량이 우편투표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코로나19 때문에 화상 및 온라인으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인 8월 18일(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미국 각지의 당원과 지지자들을 화상으로 연결해 대화를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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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인력·시간과의 싸움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투표소 투표 방식에 더해 우편투표를 대규모로 도입하면 투표용지 발송 및 회수에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민주당은 우편투표 확대를 위해 연방우체국(USPS)과 주정부에 예산을 지원하자고 주장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가 ‘선거조작’과 ‘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권자가 기표해 우편으로 보낸 투표용지가 너무 늦게 도착할 경우 생길 논란도 만만치 않다. USPS는 최근 46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 투표용지가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편투표 용지 도착 시한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카운티마다 다르다. 선거일 이전에 소인이 찍혔다거나 선거일까지 도착한 투표용지만 인정하는 식으로 기준을 세운다. 너무 많은 투표용지가 시한보다 늦게 도착할 경우 대규모 사표에 대한 논란이, 투표용지 도착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릴 경우 투표 결과 확정 지연에 따른 논란이 불가피하다. 워싱턴포스트는 11월 3일 치러진 선거결과가 추수감사절인 11월 26일 즈음에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선거결과 확정이 늦어질수록 혼란은 배가된다.
선거 당국은 유권자들에게 사표가 되지 않으려면 가급적 빨리 우편투표를 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비영리기구인 민주주의기금의 태미 패트릭은 “우편투표 용지 신청을 마감일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시간 내에 당신의 표가 투표소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편투표를 빨리하면 후보자를 고르기 위해 유권자가 숙고할 시간이 줄어든다.
모든 문제점을 능가하는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이미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지는 쪽으로 선거결과가 나오더라도 쉽게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백악관을 점거한 채 ‘농성’에 돌입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놓고 사학자와 법학자들이 진지하게 갑론을박을 벌일 정도다. 이번 미국 대선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재중 워싱턴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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