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를 배려하는 것이 승자의 품격’이라는 정서가 강한 일본에서는, 모래판 위에서 승리의 기쁨을 표현한 스모 선수가 패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스모 경기장 사진은 Peter 111에 의해 CC BY-SA 라이선스 (저작자 표시, 동일 조건 변경 허락)로 배포, 일러스트는 김일영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총리의 사임에 관대한 풀뿌리 여론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제 각각이다.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던 측근의 정치 스캔들을 따끔하게 꾸짖는 언론도 있고, 퇴임 이후의 국정 공백을 걱정하는 논객도 있다. 인터넷 댓글 여론을 보면 ‘중직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도 책임감있는 태도’라는 뜻밖의 좋은 평가도 있는데, 무엇보다 ‘퇴임 뒤 건강 회복에 힘써달라’는 격려와 응원 메시지가 많이 눈에 뜨인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 대응 실패 등 실정이 두드러져 인기가 뚝 떨어졌지만, 오랫동안 일본 국민의 신뢰를 얻어왔던 정치인이라는 점을 실감한다.
국내외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공직을 내던지는 모습에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올 만도 한데, 그의 진퇴를 한 자연인의 안쓰러운 사정으로 받아들이는 시민도 적지 않은 듯하다. 건강 때문에 퇴진하는 것이 벌써 두 번째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만도 하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고 국정을 통솔하는 총리 자리에 앉은 이상 공인으로서 책임지고 감내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바로 일주일 전 조사에서 재임 기간 중 두 번째로 낮은 지지율 (32%)이 나왔을 정도로 민심을 잃은 지도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임 발표를 둘러싼 풀뿌리 여론이 의외로 관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패자에 대한 배려가 승자의 품격”, 스모계 ‘승리의 포즈’를 둘러싼 해프닝
일본식 씨름을 뜻하는 격투기 스모(相撲)에서는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최강 격투가를 ‘요코즈나(横綱)’ 라고 부른다. 2000년대에는 아사쇼류 (朝青龍)라는 이름의 몽고 출신 격투가가 모래판을 석권했었다. 그가 결승전에서 어려운 상대를 쓰러뜨린 직후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려 호쾌한 ‘승리의 포즈’를 취한 것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일반적인 격투기 시합이라면 승자가 감격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팬의 입장에서도 선수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속시원한 순간이다. 그런데, 그 행동에 대해 패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스모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国技)’ 로 불리는 만큼, 전통과 격식을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사회의 전통적 정서가 여과없이 엄격한 규율로 작동했다. 패자의 면전에서 승자로서의 감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행동이 무례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되어야 마땅한 요코즈나가 품격이 모자란다는 불평도 터져 나왔다. 아사쇼류는 평소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언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대중들은 그의 소탈함을 사랑했고 덩달아 스모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모업계로서는 이 외국인 요코즈나의 흥행몰이가 반갑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의 ‘승리의 포즈’를 둘러싸고 절제와 예의를 중시하는 스모의 전통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젊은 팬들 중에는 솔직함이 시대의 미덕인 만큼 ‘승리의 포즈’를 금기시하는 풍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스모업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패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아사쇼류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그가 속한 팀의 사부가 불려나가 엄중한 주의도 받았다. 아사쇼류가 요코즈나 자리에서 내려온 뒤 스모의 인기가 줄곧 예전만 못하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고리타분한 운영 방식 때문이 아닐까?
‘승리의 포즈’를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외국인 요코즈나에 대한 배타적인 정서 때문에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일본에서는 ‘패자를 배려하는 것이 승자의 품격’이라는 사고 방식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고 방식이 아베 총리의 사임에 대한 온정적 여론을 부추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건강 문제가 사임의 명분인 만큼 패배자라고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정치가에게 주어진 공적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다. 미묘하게 패자의 입장에 놓여진 채 공직에서 내려오는 총리의 과오를 속속들이 들추어 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동지의 노고를 치하하는 ‘오츠카레사마’의 정서
아베 총리의 중도 하차를 전하는 뉴스에는 ‘오츠카레사마(お疲れさま)’ 라는 댓글이 수없이 달려 있다. 우리말로는 ‘수고했습니다’ 정도로 번역되는 만큼 최장수 총리의 노고를 치하하는 배려가 묻어나는 표현이다. 이 관용구는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될 뿐 아니라 쓰임새도 다양하다. 말뜻 그대로 어려운 일을 끝낸 사람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이는 의미에서도 쓰이지만, 사실은 학교나 직장에서 친구 혹은 동료와 주고받는 가벼운 인사말로 쓰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안녕하세요’ 라고 안부를 묻는 대신 ‘수고하십니다’ 라고 격려를 주고 받는 격의없는 표현인 것이다. 업무용 이메일에서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츠카레사마’ 라는 관용구를 붙이는 것이 매너로 정착되어 있다.
그런데 이 관용구는 상대를 가려 써야 한다. 일본 문화에는 내부자와 외부자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이 구분을 잘 지켜야 원만한 사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오츠카레사마’ 는 내부자, 즉 같은 집단에 소속된 동료나 지인들과 주고받는 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고객 등 심리적 거리가 있는 외부자에게 건네는 인사말로는 부적절하다. 고객이나 거래처 등에 보내는 격식있는 이메일에서 쓰면 실례가 된다. 말하자면, 이 ‘오츠카레사마’ 라는 말은 그저 고생을 치하하는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같은 집단에 속한 구성원에 대한 친근함 혹은 동지 의식이 배어있는 표현으로, 동일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연대 의식을 은밀하게 확인하는 문화적 화법이기도 하다.
◇편협한 배려심이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예전의 일본의 범죄 기사에서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무조건 미녀’라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실제로 범죄 피해자 중에 미녀가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미녀라는 형용구를 붙여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계의 관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용모를 묘사하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미녀라는 수식어를 칭찬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구시대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미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고 한들 범죄의 본질이 바뀔 리 없을뿐더러, 오히려 보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만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기자 나름대로는 떠난 자를 배려한 결과였을지는 몰라도, 어긋난 배려심의 결과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임하는 총리에게 온정적으로 건네어지는 ‘오츠카레사마’ 라는 치사가 영 석연치 않다. 동지 의식이 부추긴 온정적 배려심이, 정치인의 공과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시민의 역할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한 야당 인사가, 두 차례나 같은 이유로 자진 사퇴하는 총리를 옹립한 자민당의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이에 대해, “지병으로 물러나는 수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난이 들끓고 아베 총리 개인에게 사죄하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권장하는 문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배려심도 배려심 나름, 편협한 배려심은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 특히 냉철한 비판이야말로 보약인 정치 문화에 있어서 온정적 배려심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