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하면 최고 징역 29년, n번방 가담자도 적용될까[플랫]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이 불거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런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법원이 최고 징역 29년3개월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설정한 것은 그동안 디지털성범죄에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선고해 n번방 사건이 생겼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황에서 나왔다.

양형기준안은 판사들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으로,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내릴 때는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한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지난 14일 전체회의에서 확정한 기준안을 보면 디지털성범죄는 형의 감경이나 가중처벌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두고 결정한다. 피고인이 유포된 성착취물을 회수하는 등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 형을 감경받을 수 있다. 학업 중단 등 피해자에게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형량은 높아진다. 조직적으로 수차례 범행을 저지르면 최고 29년3월까지 선고 가능하다. 불법촬영 및 가짜 영상 제작·소지에 대한 양형 기준도 모두 높아졌다.

양형위는 관계기관에 의견을 조회하고, 11월2일 공청회를 개최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뒤 12월 양형기준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경향신문

그래픽 | 아이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해 양형기준을 직접적인 신체적 성폭력 범죄의 양형기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설정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청소년성보호법 11조 1항)의 기본 형량 범위는 ‘징역 5~9년’이다. 청소년 강간죄의 기본 형량 범위(징역 5~8년)와 유사한 수준이고, 강간죄의 기본 형량 범위(징역 2년6개월~5년)보다 높다. 양형위 관계자는 “청소년 강간과 비교해 성착취물 제작의 죄질이 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기본’ 형량의 최소부터 중간 범위 수준에서 실제로 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본다. 아동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경우 기본 형량 최소인 ‘징역 5년’에서 중간인 ‘징역 6~7년’이 선고되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양형위는 ‘특별양형인자’를 통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도록 했다. 특별양형인자란 ‘감경’ ‘기본’ ‘가중’ 등 권고영역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인자로, 일반양형인자보다 형량을 정할 때 영향력이 매우 크다. 양형위는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피해자 가정이 파탄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특별가중인자’로 두어 ‘가중’ 영역에서 처벌받도록 했다. 피고인이 유포된 성착취물을 상당한 비용·노력을 들여 자발적으로 회수한 경우에는 이를 ‘특별감경인자’로 두어 ‘감경’ 영역에서 처벌받도록 했다. 약 2만명의 시민이 참여해 만든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을 양형위에 전달했던 김영미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경우에 한해 감경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면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의견 등을 전했는데 상당 부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피고인이 성착취물을 회수할 경우 감경하도록 하는 양형인자 설정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 판사는 “영상 회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가 관건인데, (법관이)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도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피고인에게) 유도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디지털장의사를 고용하는 등 조치로 피해 회복이 실효성 있게 이뤄진 경우에 한해 감경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됐던 아동·청소년의 ‘처벌불원(不願)’을 특별감경인자가 아닌 일반감경인자로 낮춰서 형량에 반영하도록 한 것에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 판사는 “대부분 범죄에서 처벌불원이 특별양형인자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이 빠졌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3월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 13명은 특별감경인자로 아동 피해자의 처벌불원이 포함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 내용의 건의문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바 있다. 아동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했다는 점을 고려해 감경해주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양형위 관계자는 “처벌불원을 감경인자에서 삭제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합의를 통한 피해 회복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 양형기준은 ‘박사방’ 운영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일당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양형기준이 발효되기 전 법원에 공소 제기된 사건에 관해 형을 정할 때 양형기준을 참고자료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경향신문

디지털 성범죄를 쫓아온 단체 ‘추적단 불꽃’과 ‘프로젝트 리셋’ 활동가들. 석예다 PD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 등을 쫓아온 단체인 ‘추적단 불꽃’과 관련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15일 발표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들은 이같은 양형 기준이 오는 12월 최종 의결되고 재판에 반영되도록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제보한 단체인 추적단 불꽃은 15일 통화에서 “양형위원회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며 “화난사람들을 통해 양형위원회에 제출한 시민 설문조사 내용이 양형기준안에 많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플랫]불꽃과 리셋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영상]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형기준안에는 ‘형사처벌 전력(전과) 없음’을 감경 요소에서 제한해야 한다는 시민 의견이 포함됐다. 양형위원회는 “형사처벌 전력 없음을 감경 요소로 고려하려면 단 한번도 그 전에 해당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며 “불특정 또는 다수를 상대로 하거나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 감경 요소로 고려해선 안 된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가해자는 적발 전에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해자가 단 한번만 적발됐을 경우 동일범죄 전력이 있다고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변호사)는 “형사처벌 전력 없음을 감경 요소에서 제한한 건 이같은 디지털 성범죄 특수성을 고려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화난사람들과 불꽃은 “가해자가 피해확산 방지를 위해 성착취물을 삭제나 폐기, 회수 등 조치할 경우를 특별감경인자에 포함하는 것도 시민들이 바랐던 내용”이라고 전했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 대한 감경인자 반영 정도가 축소된 점, 가해자가 상당 금액을 공탁한 경우에도 감경을 받을 수 없는 점 등도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대목이다. 피해자에게 자살, 자살시도, 가정파탄, 학업중단 등을 큰 피해를 야기한 경우 가중처벌을 권고한다는 부분도 그렇다.

경향신문

‘eNd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 회원들이 지난 7월7일 서울 서초동 지방법원앞에서 ‘손정우 미국송환 불허 규탄연대’ 기자회견을 열고 피켓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성범죄보다 온라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이 높게 정해진 것도 긍정적이라고 이들은 진단했다. 최 대표는 “양형기준안의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은 기존 성범죄와 비교해 비교적 높게 설정돼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성범죄의 양형 기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성착취물 공유 공간 운영자의 처벌 강화는 양형기준안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불꽃은 “운영자 역시 유포를 한 공범이기 때문에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운영자에 대한 수사 자체가 쉽지 않다. 미성년 착취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위장수사를 도입하는 등 수사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불꽃은 “판사들이 얼마나 이 양형 기준을 받아들일지, 오는 12월에 이 정도의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잘 마무리될지가 남은 고민”이라고 말했다. 불꽃은 “양형 기준이 확정된다면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던 ‘갓갓’ 문형욱, ‘박사방’ 조주빈 등이 어떻게 처벌될지도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n번방 리와인드,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다]
https://news.khan.kr/FB9s


박은하 기자 eunha999@khan.kr
유설희 기자 sorry@khan.kr
이보라 기자 purpl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