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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2020 미국 대선

긴즈버그 후임은 누구…대선 앞둔 미국 보수·진보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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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아이콘’ 긴즈버그 별세 파장

트럼프, 이번 주 후보자 발표 밝혀

오바마 퇴임 9개월 전 대법관 지명

공화당 장악 상원서 인준 투표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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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가 1993년 7월 20일 미국 의회의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 나섰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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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미국 대법원은 버지니아군사대학(VMI)의 입학 제한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이렇게 명시했다. VMI가 남학생만 입학을 허용하는 데 대해서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광범위한 일반화로 재능과 능력이 평균을 넘어서는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지 말라는 이 판결문을 썼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양성평등 개척에 나섰던 그의 타계에 미국에선 백악관과 연방정부 건물에 조기가 게양됐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 대법관이 된 뒤 양성평등과 소수자를 위한 판결을 이끌었던 긴즈버그는 대법관 이상이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름 앞글자를 딴 애칭 RBG로 불렸다. 인기 래퍼 ‘노터리어스 B.I.G’에 빗대 ‘노터리어스 RBG’라는 별칭도 있었다. 긴즈버그 캐리커처를 그린 티셔츠와 모자 등 굿즈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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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과 여성 인권의 기수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의 별세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19일 워싱턴의 미국 대법원 앞에 모여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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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여성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려는 그의 일관된 행로가 존경을 받아서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긴즈버그는 17세에 코넬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남편 마틴 긴즈버그는 그에게 “내게도 뇌가 있다는 것을 존중해준 사람”이었다. 졸업 후 긴즈버그는 공무원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도 타자수로 일해야 했다. 그 일자리마저 임신한 뒤 잃었다. 이게 그 시대의 현실이었다. 2년 뒤 긴즈버그는 남편에 이어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이때 긴즈버그가 교수로부터 “왜 남학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는 얘기를 들은 건 유명한 일화다. 당시 한 학년 학생 500명 가운데 여성은 9명에 불과했다.

긴즈버그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말썽을 피워 학교에서 자주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인 자신에게만 학교에 와서 상담을 받으라는 요구가 계속됐다. 긴즈버그는 “이 아이에게는 부모가 둘 있다. 번갈아 가면서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학교 전화가 뚝 끊겼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지난 20년간 암과 싸우며 업무를 병행해 많은 이에게 희망을 줬다. 암 진단을 받고도 80대 나이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젊은 층이 열광했다. 이제 “나는 내 성별에 관해 호의를 바라지 않는다”는 긴즈버그의 말은 남녀평등 운동의 상징이 됐다.

보수 인사 선임 땐 대법원 보수 6, 진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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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럿


긴즈버그는 숨지기 며칠 전 손녀에게 “나의 가장 열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까지 내가 교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을 46일 앞두고 그가 타계하자 대선판은 그의 후임 지명을 놓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별세 다음 날인 19일 선거 유세에서 “다음 주 (대법관) 후보자를 발표하겠다. 여성이 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주 중 인선을 예고했다. 반면에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그 대통령이 대법관을 뽑아 상원에 인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후임 임명을 대선 이후로 늦추라고 요구했다. 미국 대법관 9명의 이념 지형은 긴즈버그 대법관을 포함해 진보 4명 대 보수 5명의 구도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의 후임을 보수 성향 인사로 채우면 보수 6명 대 진보 3명으로 완전히 기운다. 워싱턴포스트는 낙태 반대론자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에이미 코니 배럿(48)이 후임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11연방고법의 쿠바계 여성인 바버라 라고아 판사도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대법관 상원 인준, 공화당 이탈표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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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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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속전속결 후임 지명에 나선 건 코로나19를 대신할 새로운 이슈가 선거판에 등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NN은 “긴즈버그의 별세로 코로나19 대확산과 수백만 명의 일자리에 미친 경제적 충격에 초점을 맞췄던 선거 토론의 프레임을 다시 짤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로서는 경제 성적표 공방을 벗어나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결을 유도해 외곽 보수층까지 끌어들일 기회를 얻은 셈이다. 변수는 상원 인준 이탈표 여부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현재 상원 의석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및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47석으로 공화당에 유리하다. 51표를 얻으면 인준된다. 하지만 자칫 여당 관리에 실패해 이탈표가 나오면 오히려 대선 막판에 악재가 된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공화당 상원의원 중 최소 2명이 대선 전 인준 표결에 반대를 표명했다.

민주당도 긴즈버그 후임 강행이 미적지근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을 바이든에게로 끌어올 호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서 4년 전인 2016년 2월 보수 성향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후임으로 3월 메릭 갈런드 후보자를 지명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이 ‘대선 후 지명’을 주장하며 표결을 거부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당시와 달리 말을 바꾸는 내로남불로 움직이고 있다며 여론전을 확대하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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