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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기자24시] `백신혼란` 기업보다 정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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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독감이랑 코로나가 증상에 별 차이가 없다면서요. 찬바람 불 추석 전에는 우리 아이 독감 백신 꼭 맞히려 했는데…."

"백신을 상온에 노출시킨 업체가 잘못했어도 정부 책임이 더 큰 거 아닌가요. 무료 독감 접종을 늘리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놓고선 이 무슨 창피스러운 일입니까."

주로 아이를 둔 지인들이 22~23일 하나같이 보인 반응들이다. 우리는 2009년 신종플루 때 대대적인 백신 접종을 한 적이 있고,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은 매년 해왔다. 매번 해오던 일에 초대형 사건이 터진 건 누군가 '관성'에 젖어 점검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사태를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정도로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독감 백신을 상온에 노출시킨 유통업체명(신성약품)을 바로 공개했고, 문제가 된 백신이 실제 사용되기 직전에 접종을 중단해 최악의 사태는 일단 막았다. 향후 2주간 조사를 통해 상온 노출 백신 중 일부는 폐기하고 문제없는 건 접종에 쓴다고 한다. 정부가 문제없다고 한들 이미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과연 누가 맞으려 들 것인가.

신성약품은 올해 국가 무료 접종용 독감 백신 조달시장에서 백신을 낙찰받아 이런 중차대한 일을 처음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백신 단가를 후려쳐 경험이 미숙한 업체가 선정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선정된 업체를 제대로 관리·감독해 백신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은 오로지 정부에 있다. 단가 후려치기보다는 관리·감독이 더 큰 문제다. '백신을 냉장으로 보관·유통하는 건 상식이니까 설마 유통업체가 이를 어길까'라고 여겼다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정부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모든 건 매뉴얼이다. 한 줄씩 보고 지켰는지를 점검하고 그 전에 의약품 유통 경력이 있던 업체라도 정부가 단단히 교육을 시켰어야 한다. 정부는 공식 브리핑에서 유책 업체에 대한 약사법상 처벌 조항을 열거했다. 물론 업체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처벌의 매를 법원에 넘겨줄 정부가 과연 그 매를 손에 쥘 자격이 있는가. 코로나19 대응에 노력해 온 정부는 안타깝지만 이번 일에서는 업체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벤처과학부 = 서진우 기자 jwsu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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