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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매경춘추] 알카포네와 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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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논쟁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미국 금주법 시대 전설적 마피아 알 카포네다. 밀주 제조판매로 명성을 얻고 나중에 우유 유통망까지 장악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밀주 판매를 거부한 상인들을 폭탄테러로 응징하거나 적대 조직의 업소에 경찰로 위장한 부하들을 보내 기관총으로 살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무법자를 체포하여 조용히 사라지게 한 사람은 검사나 일반 경찰이 아닌 재무부 수사관 엘리엇 네스였다. 영화 '언터처블'의 주인공이다. 네스는 알 카포네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하여 장기 복역으로 출소 후 쓸쓸히 사망하게 하였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법무부, 재무부, 내무부 등 각 행정부처 산하에 연방수사(FBI), 마약수사(DEA), 이민단속(INS), 국세조사(IRS), 공원경찰(NPS) 등 다양한 수사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안에서는 비밀경호국의 통제를 받지만 담장만 벗어나면 공원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범죄 단속에 관해 검사와 일반 경찰만 떠올리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경할 듯하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수사 구조는 한국의 수사권 향방에 대해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근래의 검경 수사권 논쟁은 수사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보다는 누가 더 가지느냐의 문제처럼 보인다. 물론 검찰이 준사법기관성보다 수사기관성을 중시하면서 인권침해의 당사자로 되었으니 직접 수사 기능 축소를 논할 만하기는 하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이념과 달리 수사지휘권 배제까지 상당히 이루어지는 바람에 경찰의 통제 없는 비대화 역시 우려할 만한 상황이 되었다. 일부에서 경찰을 자치경찰과 중앙경찰로 이분화하자고 하나 이는 연방국가에서 타당한 논리일 뿐 한국에서는 즉시 대응성이나 효율성이 부족할 듯싶다.

결론적으로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검경은 수사권 일부를 포기한 후 각 행정부처에 나누어야 한다. 검사는 한발 물러나 수사 지휘를 중시하고, 경찰은 광범위한 수사 영역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일반 경찰은 역량 집중화를 통해 강도살인 등 민생범죄에 진력하고, 불량식품은 위생경찰, 상속세 포탈은 조세경찰, 내부자 거래는 금융경찰, 기업 갑질은 공정경찰, 불법 파업은 노동경찰이 전담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건축법 위반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검사도 경찰도 전부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검경 위주의 수사력 집중 방식에 대해서는 이제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 평소 현장에서 지원행정을 하는 전문 부처가 규제행정을 병행해야 당사자 반발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이러한 수사권 분산론은 권력기관 대신 행정부처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검경 다툼도 종식시킬 수 있으며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공권력 운용 설계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김병현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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