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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조회수 2억 넘긴 관광공사 한국 홍보영상...드디어 공무원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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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관광公 온라인광고 해외서 화제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서양 악기인 베이스 소리 위로 젊은 판소리꾼들이 ‘수궁가’의 한 대목을 열창한다. 국악과 현대음악이 뒤섞인 독특한 리듬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일곱 명의 춤꾼이 몸을 흔든다. 언뜻 보면 막춤인데, 자세히 뜯어보면 난해한 현대 무용 같다. 이들 뒤로 한국의 관광 명소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뮤직 비디오인가, 광고인가. 글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이 ‘B급 감성’ 영상이 대박을 쳤다. 영상의 정체는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을 홍보하는 광고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서울, 전주, 부산에서 촬영한 시리즈 세 편의 누적 유튜브 조회수만 7500만회, 페이스북과 틱톡 등의 조회수를 포함하면 2억6000만회가 훌쩍 넘었다. 유튜브 댓글난에는 “코리아의 독특한 리듬에 중독됐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한국에 가겠다”는 외국인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드디어 공무원 세대 교체가 이뤄진 거냐”는 한국 댓글도 눈에 띄었다.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인 공공기관이 어찌 이리 ‘힙’한 영상을 만들게 됐을까.

조선일보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울편 영상.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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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기획 버리고 B급 감성 노려

그동안 관광공사가 만든 공익 광고는 한마디로 ‘재미없었’다. 먼저 사물놀이패나 탈춤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준 다음, 눈부신 서울의 야경에 놀라는 외국인을 등장시킨다. 설악산 단풍이나 경주 불국사, 제주 돌하르방도 단골손님이다. 마지막에는 꼭 한류 스타가 나와 “한국으로 놀러오세요!”를 외친다. 일종의 전형이다.

이번 기획을 총괄한 오충섭 한국관광공사 브랜드마케팅팀장은 “이 틀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스타를 앞세운 기존 홍보 영상은 일부 한류 팬을 제외하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기획 단계부터 유명 연예인을 과감히 배제하고, ‘B급 감성’을 노렸어요.” 한국관광공사는 광고 제작을 맡은 HS애드에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젊은 기획자를 요구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맡게 된 이가 서경종(44) HS애드 캠페인 디렉터다.

‘한국이 이렇게나 잘났다’는 식의 기획은 이미 뻔했다. 홍보 영상이 광고를 넘어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려면, 최대한 광고 티를 빼야 했다. 그래서 서 디렉터는 뮤직 비디오를 들고 나왔다. “언어가 안 통해도 세계인 누구나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리듬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서 디렉터는 힌트를 여섯 살 딸에게서 찾았다. 딸은 언젠가부터 현대 판소리 그룹 ‘이날치’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마침 SNS에서도 이날치와 현대 무용 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함께한 ‘범 내려온다’ 공연 영상이 화제였다.

결국 비보이 그룹, 인디밴드 등 수많은 후보군을 제치고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낙점됐다. 공사로선 위험한 도박이었다. ‘댄서들이 유명 관광지를 돌며 퓨전 국악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는 포맷은 별다른 맥락이 없었고, 선정된 아티스트도 기존 모델에 비해 무명에 가까웠다. 서 디렉터는 “통과가 안 되면 어쩔까 싶어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직접 춤까지 추면서 재미를 어필했다”고 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은 “우리는 이름 그대로 애매모호한 본능을 춤으로 표현하는 현대 무용 그룹인데, 우리의 언밸런스한 춤이 기획자들의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공익 광고, 선 넘기보단 선을 타는 것"

온라인 캠페인이다 보니 제작 내내 예산의 압박에 시달렸다. 모델비가 없어 현장에서 섭외한 일반인들을 대거 등장시켰는데, 이것도 깨알 웃음 포인트가 됐다. 촬영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불상에 절하는 용궁사의 가족, 평상에 앉아 연신 부채질하는 감천문화마을 동네 할머니 모두 즉석 섭외한 일반인이다. 서 디렉터는 “별다른 노림수 없었던 선택들이 우연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B급 감성이라고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저질’과 ‘웃음’의 경계에 있는 B급은 그만큼 비난받기 쉽다. LH공사는 지난 7월 신혼희망타운 애니메이션 광고에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웃음 포인트라며 넣었다가 시청자들의 항의에 결국 광고를 내렸다. ‘병맛’ 콘셉트로 무장한 2016년 문체부의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 캠페인 ‘아라리요 평창’도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오충섭 팀장은 “무작정 선을 넘기보다는 아슬아슬 선을 타는 공기업만의 ‘B급 프리미엄’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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