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저녁 한 의료계 모임에서 서울 주요 대학병원장은 "의대생 국시거부와 관련해 싸늘한 여론을 의식해 어떤 식으로든 의료계 대표들이 대국민 사과 및 양해를 구해 의대본과 4학년생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주는 방안를 놓고 정부와 물밑접촉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의사국시 일정을 고려하면 가급적 1주일안에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사국시 응시기회를 두차례 연기해 이달 6일 밤 12시까지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의사국시 응시대상 3172명 중 14%인 446명만이 신청했다. 나머지 2726명은 지난달 정부의 의대증원,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을 벌이면서 국시 응시를 거부했다.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와 정부, 여당이 문제가 된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후에도 국시 거부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다. 실기시험은 지난 8일 시작됐고 11월 20일까지 분산돼 진행된다. 의료계는 실기시험 및 내년 1월 필기시험 일정, 2700명에 달하는 수험생 숫자를 고려하면 추석전에 해결점을 찾고 추석이후 곧바로 시험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병원장은 "요즘 젊은 세대의 세태인지 몰라도 병원 내부에서도 의대생들의 모호한 입장표명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당사자들이 명확하게 '응시하겠다'고 밝히지 않고 '응시하겠다는 의사표명'이라는 성명서만 달랑 1장 내놓은 것은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의사도 아닌 배우는 학생들이 정부 의료정책에 반발해 의사면허 시험의 첫 관문까지 거부한 것은 오버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 의료계 인사는 "상당수 의대생 부모가 의사이거나 부유층 자녀들이 많아서 일부 1년동안 쉬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귀뜸했다.
최근 흐름을 보면 의대생 본인들보다 의료계가 더 안달이 난 모습이다. 이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더욱 악화되는 측면이 있다. 스스로 성적 1등이라는 학생들이 명확하고 강한 의사표명도 하지 않고 교수들에게 문제해결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국립·사립대병원 등 25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당장 내년에 2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할 심각한 상황이다. 부족한 인원 탓에 응급환자가 많은 외과 등 비인기과 전공의 모집은 더욱 어려워지고 의료 취약지역과 군대의 의무 영역에 매우 큰 공백이 생길 것"고 밝혔다. 호소문은 사립대의료원협의회, 국립대병원협회, 사립대병원협회, 상급종합병원협의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등 5개 단체가 공동작성했다. 이들은 "국민의 아픔과 고통에 민감하지 못했던 부족함은 스승과 선배들을 책망해주시고, 청년들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기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호소문을 내고 "의대생들이 국가고시를 치르지 못함으로써 발생할 진료공백 사태는 저희 원로 의학자이자 의료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정부가 의대생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지지해 달라"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도 강도태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긴급 면담을 통해 "의대·의전원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를 위해 협조해달라. 신규 의사인력이 의료기관으로 투입되지 못하면 결국 국민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만약 의·정 타협에 의해 의사 국시 거부자들에게 추가 응시기회를 준다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험은 그대로 치르면서 응시거부자 구제 차원의 시험을 별도 진행하는 '투트랙' 의사국시의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69년의 의사국시 역사상 집단으로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추가 응시를 허용한 전례가 없고, 국민의 여론이 여전히 비판적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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