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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분단없는 하늘에서 통일열사들과 ‘빗자루 무예’ 펼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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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쌍무기수’ 임동규 선생님 영전에

한겨레

생전의 임동규 선생. 사진 24반무예경당협회 제공


지난 21일 우리 곁을 떠난 용진 임동규 선생님은 분단된 조국에서 오직 평화통일을 위하여 온몸으로 살았다. 광주기독교협의회(NCC)에서 수 십년 동안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면 고향에 갈 수 없는 장기수 선생님들을 모시고 위로하는 활동을 하면서 임 선생님과도 인연을 맺었다. 2013년에는 다큐멘터리 <빗자루 도사와 동지들>를 제작하면서 임 선생님의 남다른 삶을 정리할 기회도 있었다.

1939년 전남 광산군 본량면 탑동마을에서 태어난 임 선생님이 광주 서중·일고를 거쳐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을 때 고향과 문중에서는 ‘인물 나왔다’며 큰 기대를 했단다. 서울대 재학시절 농대생 이우재 등과 함께 ‘남산농촌사회연구’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 ‘구농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협업농장운동을 시작했다. 1979년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과 ‘남한사회주의민주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이중으로 무기형을 받아 전례없는 ‘쌍무기수’가 된 선생님은 옥중에서 혼자 빗자루를 들고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24반’을 복원해냈다. 이는 단순한 전투적 무예 기능을 익히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부국강병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석방된 이듬해 1989년 7월1일 민족무예도장 ‘경당’을 열고 우리무예연구회 회장을 맡아 뚜렷한 주체의식과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임 선생님을 모시고 ‘통일 강연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발표한 것처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해야 한다. 미국놈들 의지하면 안된다”고 외치던 카라카랑한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다큐 제작 때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중국은 살아나지만 미국은 계속 살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유는 미국은 군사력만 의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동양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 말씀도 잊히지 않는다.

임 선생님은 지난한 투쟁 가운데에서도 정신력과 의지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10여년 동안 징역살이에서 얻은 고통은 몸을 망가지게 했고 차츰 기억도 흐려지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금 찾아와서 괴롭히고 있다”면서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이다. 2014년 대장암 수술과 이후 뇌졸중이 겹치고 설상가상으로 파킨슨병으로 병마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투병 중에도 항상 손에서 책을 멀리 하지 않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중경제 100문 100답>(박현채·임동규 공저), <길-빗자루 도사> 책도 남겼다.

“어서 일어나서 판문점도 가고 금강산도 가자” 약속했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통일열사들을 뒤따른 임 선생님, 이제는 분단의 상처와 아픔이 없는 그곳에서 동지들과 함께 멋진 하늘의 빗자루 도사가 되시길 빌어본다.

장헌권/목사·광주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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