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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매경춘추] 당신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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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부분의 갈등은 '내가 옳다'는 망상에서 출발한다. 내가 옳으면 누가 틀렸는가? 당연히 저 인간이다. 누가 변해야 하는가? 당연히 상대방이다. 상대를 바꾸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이건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당신은 상대를 바꿀 능력이 없다. 그건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가 바뀌어야 하겠구나, 그런 동기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변화의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받고 공감받는다는 사실을 느낄 때 변화의 동기가 생긴다.

'신 박사, 내가 애들하고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애들이 자꾸 피하는 것 같아, 이유를 모르겠네.' 어느 친구의 하소연이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슬그머니 자기들 방으로 들어간단다. 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나는 그 친구 얼굴만 봐도 알겠는데. 그런 표정으로 집에 들어가는데 아이들이 도망가야 정상 아닌가? 설혹 자녀들이 피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열심히 공부해라, 똑바로 살아라, 아빠 어릴 때는 말이야…. 그러니 아이들이 문을 닫고 귀를 막아 버린다. 회사에서도 다를 리가 없다.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그럼 관계를 통해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판사 노릇 그만하고 변호사 노릇을 하면 된다. 옳고 그름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소통과 관계를 위해서는 변호사 노릇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뜻이다.

소통은 무엇으로 하는가? 당연히 대화다. 이렇게 생각하니 소통이 안 된다. 사실 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7%밖에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소통은 표정, 눈빛, 태도와 같은 비언어적인 도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낮다. 언어적 소통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말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말보다 더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에도 좀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남편들이 집에서 제일 무서울 때가 언제일까? 당연히 아내의 침묵이다. 아내가 입을 닫으면 긴장이 올라간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징조다. 아내의 침묵보다 더 무서운 순간이 있다. 침묵하던 아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다. "여보, 이야기 좀 합시다."

공포가 몰려온다. 아, 이거 뭐가 잘못되었구나. 내가 뭘 잘못했지?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이미 배웠다. 아내가 이야기하자는 말은 결코 이야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당신, 한번 혼나 볼래' 이 뜻이다. 우리는 꼭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가 마음에 안 들 때, 상대를 바꾸고 싶은 때 대화를 시도한다. 문제가 생겼으니 대화로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이런 식의 대화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잘난 사람들, 윗사람들, 부모들이 문제다. 훈시하고 훈계하고 소통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들어보면 구구절절 옳은 소리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말들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곧 추석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 시기, 판사 노릇은 접고 변호사가 되는 훈련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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