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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문장으로 읽는 책] 이은혜 『읽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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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읽는 직업


자기 삶을 꾹꾹 눌러 담아서 공적 자아로 확장시키는 이들은 ‘타고난 저자군’에 속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을 직시하고자 군더더기 감정과 기억은 과감히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공적인 존재로 자아를 확장시켜 스스로 ‘글감’이 되는 이들을 독자는 좋아한다. …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울음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온다.

이은혜 『읽는 직업』

누가 작가가 되는가? 아니 누가 되지 못하는가? 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자인 저자는 이렇게 쓴다. “우리 모두에게도 상처받은 자아가 있지만, 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 모습들을 껍데기 안에 감추는 데 익숙하다.” “읽고 다듬고 세상에 내놓았던 수많은 원고는, ‘고통’이 집 지하실에 웅크려 있지 않고 빛 속으로 걸어 나와 실재하는 현실임을 알게 했으며,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귀머거리가 되는 것은 오히려 나임을 깨닫게 했다.”

작가 뒤에 숨어 작가를 만드니, 독자에겐 잊힌 존재지만 한 나라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실질적 바로미터가 출판사 편집자란 말도 있다. “각주는 글쓴이의 실력을 검증하는 세밀한 장치다.” “실력은 없지만 과욕이나 상투적인 권력을 가진 이들, 그들의 구멍을 메우느라 편집자들은 흩어진 밀알들을 끌어모아 반죽하듯이 숱한 시간을 갈아 넣는다.” 흥미로운 편집자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가 뒤에 숨어 있기에 아까운 필력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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