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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우리 아들 연봉 높아요” 결혼 늦은 자녀에 속탄 부모들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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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예비 사돈간 만남 추진

부모 20팀 선발에 102팀 지원...경쟁률만 5:1

혼인 줄고 결혼 연령 높아진 세태 반영

조선일보

지난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한 카페에서 열린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day)' 행사에 참가한 한 여성이 자녀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20~30대 미혼자녀를 둔 부모 20여명이 참가해 자녀의 짝을 찾았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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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퇴직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폐 끼칠 일 없습니다. 씨암탉은 기본이고 내 딸보다도 더 사랑해주겠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한 카페에서 열린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 데이(day)’ 행사에서 20대 후반 딸을 둔 김모(55)씨가 외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위가 생긴다면 뭘 해주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날 현장에 청년들은 없었다. 대신 20~30대 미혼 자녀를 둔 부모 20여명이 미리 준비한 자녀의 프로필을 교환하면서 예비 사돈을 찾았다. 혼인율이 감소하고 결혼 나이가 높아지는 추세 속에서 애가 탄 부모들이 서로 자녀를 두고 ‘간접 소개팅’을 하게 된 것이다.

이날 현장에는 ‘우리, 사돈 맺어봅시다’라고 쓰인 현수막 아래 10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한 아크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자녀의 성별에 따라 부모가 1~2명씩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탁자 모서리엔 키, 직업, 취미 등 각종 스펙을 적은 자녀의 프로필이 준비돼 있었다. 부모가 서로 자녀를 소개해줄 의향이 있을 경우, 자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두 사람의 연락처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달서구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모두 20팀이 선발돼 참석했지만 접수 단계에서 102팀이 지원하는 등 경쟁률이 약 5대 1에 달했다. 연령대는 자녀가 30대, 부모가 60대가 대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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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한 카페에서 열린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day)' 행사에 참가한 한 남성이 자녀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20~30대 미혼자녀를 둔 부모 20여명이 참가해 자녀의 짝을 찾았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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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부모들은 탁자마다 약 5~10분 정도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옆의 탁자로 이동해 또 다른 예비 사돈을 만났다. 쉬는 시간에는 지원자에 한해 내 자녀를 자랑할 수 있는 1분 토크 시간도 제공됐다. 한 참가자가 “우리 아들은 뭘 해도 끝장을 보는 책임감이 있다”고 하자 주변의 호응이 저조했지만 “연봉이 아주 세다”고 덧붙이자 곳곳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윤정희(62)씨는 “우리 집에선 제사도 없고 (아들과 며느리)두 사람이 알콩달콩 잘 지내는 게 소원”이라면서 “딸 주세요”라고 했다.

이날 참석한 부모들이 자녀의 결혼을 원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사돈 만남에 실패할 경우 아들이 실망할까봐 아들이 모르게 참석했다는 여명숙(60)씨 부부는 “아들이 결혼을 원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 같아서 부모 마음에 참석해봤다”면서 “우리 부부가 만나서 얻은 기쁨을 내 자식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딸을 둔 김씨는 “딸은 결혼 생각이 있지만 여자가 짊어질 부분이 많을듯해 반반인 마음으로 왔다”면서도 “우리 부부는 서로 배우면서 성장했던 기억이 컸기에 딸의 만남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로 떠나보낸 자녀의 배필을 찾기 위해 참가한 이모(62)씨는 “둘째가 먼저 결혼하고 첫째가 혼자 남아있으니 애가 부담을 느끼더라”면서 “서른 넘어 취업하면서 여러모로 힘들었을 텐데 결혼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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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한 카페에서 열린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day)' 행사에 참가한 한 여성(앞줄 오른쪽)이 자녀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20~30대 미혼자녀를 둔 부모 20여명이 참가해 자녀의 짝을 찾았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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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혼인건수는 지난 2011년 32만 9000건을 달성한 이후 지난해 23만 9000건으로 매년 감소했다. 초혼 나이 역시 지난해 남자 33.4세, 여자 30.6세로 매년 증가 추세다.

달서구청에 따르면 이날 예비 사돈들의 만남에서 20팀 중 남녀 각각 6팀씩 총 12팀이 매칭에 성공했다. 부모를 통해 자녀의 의사를 물어본 뒤, 자녀들끼리도 모두 상대방을 만나보겠다고 결정하면 최종적으로 만남이 이뤄진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바쁜 직장생활과 이성간 만남의 기회가 부족한 자녀를 위한 부모님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마련한 행사였다”면서 “앞으로도 뜻있는 부모와 자녀의 결혼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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