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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왜냐면] 아동보호체계 20년 만의 ‘전면 개편’ 의미와 과제 / 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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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정순 l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최근 인천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 화재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가정 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891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7%가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19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4만1389건 가운데 3만45건이 아동학대로 판단됐다. 하루 평균 80여건, 시간당 3명의 아동이 학대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학대 피해 아동 발견율 또한 전년도 대비 22% 증가했는데, 5년 전인 2014년과 비교했을 때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 한해 동안 학대로 사망한 아동도 42명에 이른다.

요즘엔 아동학대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아동보호체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아동학대 대응을 위한 국가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996년 굿네이버스가 민간단체 최초로 아동학대 상담센터를 개소하면서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시작했고, 1990년대 말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잇따라 소개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비로소 명문화된 것은 2000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아동보호 현장은 민간 중심으로 움직였다. 아동학대 사건은 매년 급증했지만, 예산과 인프라는 부족했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아동보호체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과 학계 등에서 이어졌다.

다행히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아동보호 종합지원체계 구축’ 내용이 반영되면서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정부는 비로소 아동학대 대응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고, 이를 위한 시행 근거가 포함된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다음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년 만에 실행되는 아동보호체계의 전면 개편이다.

10월부터 아동학대 개입과 대응에 있어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의 업무가 구분된다. 전국 지자체에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공공의 영역에서 신고 접수와 현장 조사를 담당하고, 민간에서는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학대 예방을 위한 사례 관리에 집중하게 된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 아동과 가정에는 통합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새로운 법체계 시행을 앞둔 일선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지자체마다 조직과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으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채용도 서둘러 준비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역시 심층사례관리기관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에 수행하던 아동학대 신고 접수, 현장 조사, 조치 등의 업무 또한 지자체에 잘 이관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금 시점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동보호체계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의 협력이다. 변화된 아동보호체계가 아동을 위한 최상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 또한 전면적인 변화의 시기에 아동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하고, 충분한 지원 방안을 갖춰주길 기대한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과 끝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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