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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가짜 공정’ 감싸는 친문, ‘국민의 힘’이 그들과 달라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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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이슈&북스] ‘오뒷세이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오복음서 7장 3절)

성경의 이 말씀은 요즘 이 나라의 여당과 야당, 모두에 해당한다. 물론 여당이 집권당이고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여당의 폭주를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야당도 남을 비판할 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먼저 민주당과 집권세력으로 말하자면, 눈에 아주 큰 들보가 들어 있다. 집권할 때는 국민에게 감동 주는 촛불정부가 되겠다더니 감동은커녕 곳곳에 악취가 진동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과 추미애 현 법무장관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써서 자식들이 특별 대우를 받게 했다. 국민의 비판에 대해선 “불법은 아니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솔선수범해서 국민에게 감동 주겠다며 집권당 된 정당의 변명치곤 너무도 치졸하다.

요즘 호부견자(虎父犬子)란 비판을 듣는 김홍걸 의원의 처신과 민주당의 처분 모두 실망스럽다. 평생 별다른 직업 없이 살아온 김홍걸 의원은 어떻게 100억대 재산을 모았는가. 남들한테는 부동산 투기하지 말라는 법안 내놓고, 자기는 집 여러 채 샀다. 걸리니까 아내 탓을 했다. 임대차법 시행 전에 전세 계약금을 대폭 올려 받았다. 이런 사람을 민주당은 고작 제명 처분했다. 당연히 의원직을 내놓는 결단을 보여야 그나마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

지난 21일 추미애 장관의 발언도 듣는 사람 귀를 불편하게 했다.

“그동안 법무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국민이 뜻에 따라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추 장관은 인사 네 번으로 풍비박산 냈다. 검찰 중립을 이렇게 심하게 훼손해놓고 그걸 개혁이라고 하니, 공정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검찰에게 공정이란, 힘 센 사람, 권력 있는 사람, 빽 있는 사람 봐주지 않고 수사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선거관리를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로 민주당 열혈 지지자인 조성대 한신대 교수를 추천했다. 선관위원마저 내 편을 심으면서 무슨 공정을 운운하는가.

대통령은 말로만 공정을 외친다.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공정이란 단어를 무려 서른 일곱번이나 썼다. 집권세력이 공정을 가장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마치 자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딴청을 피웠다.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자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는 대통령 발언은 국민 귀에 공허하고 허황하게 들릴 뿐이다.

제1야당 국민의힘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박덕흠 의원을 두고 국민의힘도 자기 진영만 옹호하고 제 편 감싸기에 집착하고 있지 않으냐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을 지낸 박 의원의 가족이 국토부 산하기관과 서울시 등으로부터 수백억원대의 공사를 따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불법이 있었는지를 떠나 부적절한 처신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0대 국회 시절 손혜원 의원의 목포 땅 투기 의혹을 두고 이해관계 충돌이라 지적했던 정당이, 비슷한 상황이 자기들 문제로 제기되자 “조사를 지켜보자” 하며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니 여당에 실망한 국민이 흔쾌히 야당에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박 의원은 결국 스스로 당을 떠나면서 사실 관계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사건 추이에 따라 당에도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대한민국 여당과 제1야당이 이처럼 자기 잘못에는 관대하고 서로를 향해 “너희 잘못이 더 크다”며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 당은 저 당보다 지은 죄가 작으니 당당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가벼운 죄를 범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배고파서 빵을 훔쳤다면 정상참작도 된다. 그러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는 서사시 ‘오뒷세이아’에서 죄의 경중 문제를 다뤘다. 트로이 전쟁에 나서기 위해 집을 떠난 지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 섬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를 유혹한 구혼자들을 모두 죽인다. 다만, 구혼자 중 암피노모스가 비교적 선한 사람이고, 자기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기까지 했으므로 학살극이 벌어지기 전에 섬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암피노모스여, 내가 보기에 그대는 아주 슬기로운 사람 같소이다. 또 신중한 사람 같아 보이오. 그러니 내 말 명심해서 들으시오. 그대를 어떤 신이 집으로 데려가시어, 그가 사랑하는 고향 땅에 돌아올 때 그대가 그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소.”(‘오뒷세이아’ 18권)

암피노모스는 섬을 탈출하지 않고 머물렀다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손에 죽는다. 여신 아테네가 죄지은 암피노모스를 살려두지 않기로 그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이를 통해 죄지은 자의 윤리적 의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 어떤 형태로든 죗값을 치러라’ ‘죄지은 자가 내 죄는 경미하다고 정당화하지도 변명하지도 말라’

남의 잘못을 잡아내는 데는 귀신처럼 굴다가도 자기 잘못 앞에선 장님처럼 구는 이 땅의 정치인들 들으라고 한 말 같다. 정치인들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깨끗이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국민이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영상을 클릭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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