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 비서 이후 한국행을 택한 최고위급 인사로 평가받는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 파장에 정부와 청와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지난 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잠적해 서방 망명설이 돌았던 조 전 대사대리의 지난해 7월 한국행이 15개월여 만에 뒤늦게 알려지면서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行..남북 관계 미칠 파장은?

조 전 대사대리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아내와 함께 종적을 감췄다. 2011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북한 대사급 외교관의 망명이라는 점에서 그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제 3서방국가 등의 망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졌으나 가능성이 작게 점쳐지던 한국행을 택한 것이다.

지난 2018년 11월 귀임을 앞두고 돌연 잠적했던 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조 전 대사대리가 2018년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트레비소 인근에서 열린 한 문화 행사에 참석한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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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에 대해 청와대는 함구하고 있다.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앞서 6일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이 보도되면서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관계 부처와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은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7년 황장엽 전 비서의 한국 망명과 비견된다.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이후로 북한 대사급 외교관이 망명한 사례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내부 단속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최근 북한이 서해상에서 우리 공무원을 피격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남북 관계는 혼돈에 빠졌다. 북한이 즉각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와 김 위원장의 ‘사과’ 뜻을 표명했지만 우리 측의 공동조사 요청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가운데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알려진 것이다.

더욱이 조 전 대사대리는 이탈리아에서 김 위원장의 사치품 조달을 책임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 전 대사대리의 잠적만으로도 당혹스러웠던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한국 망명에 더욱 부담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오는 10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남북관계에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북한이 대남 비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와 청와대 역시 이 같은 점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을 비밀에 부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확인해드릴 수 있는 점은 없다”라며 “정부 부처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여야 모두 조심스러운 반응..北 무대응 가능성도

정치권에서도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영국 대사관 공사로 재직 중 한국 망명을 택한 태영호 현 국민의힘 의원은 “조성길이 만약 대한민국에 와 있다면, 딸을 북에 두고 온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 언론이 집중조명과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해철 의원도 “본인이 한국에 온 것이 알려지는 것을 당연히 원하지 않았다”라며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도 (이 사실이) 오픈되는 걸 원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 자제를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미 꽤 시일이 소요됐다는 점에서 북한이 굳이 상처를 들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해상 총격 사건으로 이례적으로 사과의 뜻을 보이면서까지 남북 관계를 관리하겠다고 마음먹은 김 위원장을 고려하면 수면 아래에 머무르고 있는 조 전 대사대리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조 전 대사대리 이전에는 황장엽 전 비서와 함께 장승길 이집트 대사와 형 장승호 프랑스 경제참사관 등이 미국 망명을 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