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보스'인 대통령 후보를 충실히 변호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긴 했으나 예민한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는 바람에 '카운터 펀치'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평화적 정권 이양' 의사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동문서답 했고,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대법관 숫자를 늘릴 것이냐는 펜스 부통령의 집요한 질문에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1차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같은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바 있다.
이날 공격의 포문은 해리스 후보가 열었다. 그는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심각성을 숨겼다"며 "미국인들은 역사상 최악의 정부 실패를 목격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펜스 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중국 입국금지를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라며 반대했다고 맞받았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직접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오히려 민주당이 백신 신뢰성을 깎아내린다며 "목숨을 갖고 정치 놀이를 하지 말라"고 역공을 시도했다.
펜스 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표절 스캔들을 슬쩍 거론하기도 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대응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87년 첫 대선 경선 출마때 영국 노동당의 닐 키녹 의원의 연설을 표절했다가 사퇴한 바 있다.
두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은 또 다른 논점은 증세 문제였다. 해리스 후보는 이날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2조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국민이 부담하게 됐다며 "임기 첫날(Day 1)에 2017년 감세를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펜스 부통령은 즉각 "여러분은 방금 바이든이 첫날에 세금을 올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세 우려를 부각시켰다. 해리스 후보는 "연간 40만 달러 이하 소득자의 세금은 전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한다"고 재반박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바이든 전 부통령이 셰일가스 채굴을 위한 '수압 파쇄법(fracking)'을 금지해 관련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이슈가 된 문제를 파고 든 것이다. 해리스 후보는 "수압 파쇄법을 금지 하지 않겠다"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이미 바이든 전 부통령도 수압 파쇄법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관 증원, 증세, 수압 파쇄법 문제 등을 해명하느라 해리스 후보가 다소 수세에 몰린 듯한 장면이 몇차례 연출됐다. 이와 함께 펜스 부통령은 "해리스 상원의원은 뉴스위크가 선정한 가장 진보적인 상원의원"이라며 그린 뉴딜에 가장 먼저 찬성했다고 몰아부쳤다. 해리스 후보가 나프타(NAFTA)를 개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반대표를 던진 점도 부각시켰다. 낙태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민주당은 기독교 신앙을 공격한다"며 "나는 낙태에 반대한다"고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펜스 부통령으로선 이날 토론의 논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춰지는 것을 피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다소 지루하긴 해도 한때 보수 라디오방송 진행까지 했던 토론 기술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발언 제한시간을 수차례 넘기며 '점유율'을 높인 것도 의도된 전략이었다.
물론 해리스 후보도 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회피 문제와 기저질환자의 의료보험 가입 제한 문제를 공략했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맨"이라고 피해갔고 의료보험 문제에는 "계획이 있다"면서도 즉답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보수 우위가 확대되면 오바마 케어의 핵심인 기저질환자 보험 가입 허용을 위법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해리스 후보가 "바이든은 중국 공산당의 치어리더"라고 공격하는 펜스 부통령을 향해 "당신들은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패했다"고 받아친 대목도 돋보였다.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외교 치적으로 내세우며 IS 희생자 부모를 토론회에 초청까지 한 펜스 부통령의 의도된 공격에도 말려들지 않았다. 해리스 후보는 즉각 희생자를 애도한 뒤 "트럼프는 IS의 반격으로 심각한 뇌질환을 얻은 사람들에게 두통이라고 했다"며 "군인들을 패배자라고 말한 것과 같은 패턴"이라고 맞받았다. 또 "트럼프는 친구를 배신하고 독재자를 껴안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만 해리스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인사들의 코로나19 감염 문제를 직접 공격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말라거나 '신의 축복'이라고 말한 점을 파고들지도 않았다. 중도보수 유권자의 '역풍'을 우려한 것이지만 야당 후보가 오히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 됐다.
이날 토론에서 두 부통령 후보는 지난달 말 1차 대선후보 토론이 사상 최악이었다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막말이나 끼어들기를 비교적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 후보는 몇차례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라고 제지했으나 펜스 부통령의 늘어지는 답변까지 적극적으로 막아서진 않았다. 과거 부통령 후보간 토론의 전례를 보면 두 후보의 TV토론은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한 두 사람이 2024년 또는 2028년 대선에서 다시 맞붙을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전초전'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토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을 계기로 후보들 사이에 아크릴로 만든 투명 차단막이 설치된채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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