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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NBA 미국 프로 농구

텍사스 노숙자에서 NBA 결승전 영웅으로, 지미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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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의 지미 버틀러

결승 5차전 대활약, 2승3패로 반전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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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버틀러가 10일 NBA 파이널 5차전에서 경기 막판 자유투를 앞두고 잠시 펜스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모습. 그는 이날 단 48초만 쉬고 47분12초 동안 코트를 누볐다. / NBA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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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NBA(미 프로농구) 파이널 5차전의 마지막 2분여는 NBA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했다. LA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36)와 마이애미 히트의 지미 버틀러(31)는 경기 막판 점수를 주고받는 ‘쇼다운’을 펼쳤다. 코트 위엔 10명의 선수가 있었지만, 마치 둘의 대결 같았다.

◇ 르브론과 역사적인 쇼다운

101-101로 맞선 4쿼터 종료 1분 52초 전 버틀러는 미드 레인지 점퍼를 꽂아넣었다. 103-101로 히트가 리드. 르브론도 가만있지 않고 1분 34초 전 골 밑을 돌파해 슛을 성공하며 추가 자유투까지 얻어냈다. 자유투까지 넣으면서 레이커스가 104-103으로 앞섰다.

이번엔 버틀러의 차례. 1분 13초를 남기고 마키프 모리스의 수비를 피해 점퍼를 성공하며 105-104로 점수를 뒤집었다. 르브론도 골 밑 돌파 후 슛이 실패한 것을 재차 잡아 성공했다. 다시 레이커스의 106-105 리드. 58.2초가 남았다.

46.7초를 남기곤 버틀러가 슛을 시도하다가 파울을 얻어냈다. 자유투 두 개를 모두 넣으며 히트가 107-106으로 리드를 잡았다. 레이커스는 종료 21.8초 전 앤서니 데이비스가 골밑 슛을 넣으며 108-107로 다시 앞섰다.

이대로 끝나면 레이커스는 우승, 히트는 준우승이었다. 하지만 버틀러가 가만있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골 밑으로 돌진해 레이업 슛을 시도했다. 이를 막던 데이비스가 반칙을 하면서 다시 자유투 기회를 얻었다.

이날 버틀러는 47분째 뛰고 있었다. 그는 자유투를 하기 전 펜스에 몸을 기대며 잠시 숨을 골랐다. 다리가 후들거릴 법도 했지만 자유투 라인에 선 버틀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실수 없이 두 개를 모두 꽂아 넣으며 히트가 다시 109-108로 승부를 뒤집었다.

마지막 공격에 나선 레이커스는 르브론이 돌파하다 기가 막힌 패스를 내줬고, 이를 잡은 대니 그린이 역전 3점슛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은 림을 맞고 튀어나왔다. 모리스가 리바운드를 잡았지만 어이없는 패스 미스를 했다. 경기는 히트의 111대 108 승리로 끝났다.

7전4선승제의 이번 파이널은 결국 6차전까지 가게 됐다. 레이커스가 3승2패로 앞서고 있다.

이날 버틀러의 기록은 35점 12리바운드 11어시스트 5스틸(자유투 12개 시도 12개 성공). 경이적인 기록으로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간 버틀러는 “나와 나의 동료들은 오늘 코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이게 우리가 경기를 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버틀러가 이번 파이널에서 보여준 활약은 눈부시다. 지난 3차전에서 승리할 때도 40점 11리바운드 13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자칫 싱거워질 수도 있었던 2020 파이널은 버틀러가 분전하며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시카고 불스 시절부터 르브론을 잘 막기로 유명했던 버틀러는 르브론의 네 번째 우승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 거리를 헤매던 소년이 불스에 입단

버틀러는 좌절을 딛고 성공한 인생 스토리로 유명하다.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웬만한 농구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시절 얘기를 잘 꺼내려 하지 않는다.

버틀러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외곽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어머니는 “그냥 꼴 보기 싫으니 집에서 나가라”는 모진 말로 버틀러를 거리로 내몰았다. 버틀러는 “왜 친부모가 나를 버렸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숙자 생활을 하던 그를 구한 건 고등학교 시절 농구부 동료의 어머니 미셸 램버트씨였다. 버틀러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램버트씨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미 키우던 자녀만 6명이었지만 램버트씨는 다른 자녀와 똑같이 버틀러를 대했다. 수업이나 농구부 연습에 빠지면 엄하게 꾸짖었고, 진로에 대해선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버틀러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0번째로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자 눈물을 쏟으면서 램버트씨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자신의 등번호를 램버트씨가 골라준 21번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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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의 시카고 불스 시절 모습.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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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불스의 에이스로

불스에서 첫 시즌인 2011-2012시즌 벤치 멤버로 활약한 버틀러는 2012-2013시즌 후반기 마이애미 히트전에서 르브론을 상대로 인상적인 수비를 펼치며 스타팅 멤버로 올라섰다.

버틀러는 2014-2015시즌 평균 20.0점을 올렸다. 원래 불스의 간판이었던 데릭 로즈가 부상으로 주춤하는 사이 팀의 에이스로 올라섰다. 2015년엔 올스타에도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해 플레이오프 동부 콘퍼런스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르브론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패하며 탈락했다.

2016-2017시즌엔 평균 23.9점 6.2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무릎을 꿇으면서 또 한 번 좌절을 맛봤다.

버틀러는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2시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오전까지 기술과 슈팅 훈련을 쭉 이어간다.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올드 스쿨’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수비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이런 성향은 불성실한 동료들을 만나면 갈등으로 이어졌다. 불스에서도 후배들이 열심히 뛰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상황이 되자 불스는 버틀러를 놓고 트레이드를 저울질하다가 2017년 6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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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입단할 당시 구단 트위터의 환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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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소타를 14년 만에 PO로 이끌다

팀버울브스 유니폼을 입은 버틀러는 2017-2018시즌 평균 22.2점 5.3리바운드 4.9어시스트로 팀을 이끌었다. 2018년 2월 무릎 부상으로 장시간 코트를 비운 그는 정규리그 막판에 돌아와 팀버울브스를 14년 만에 플레이오프로 끌어올렸다. 케빈 가넷이 활약한 2004년 이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휴스턴 로키츠에 1승4패로 밀려 탈락했지만 팀버울브스로선 정말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오른 것만으로도 성과가 큰 시즌이었다.

버틀러는 2018-2019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축 선수인 칼 앤서니 타운스와 갈등을 빚으면서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버틀러는 재능이 넘치는 후배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에 타운스가 반발한 것이었다. 결국 2018년 11월 버틀러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다시 팀을 옮겼다.

버틀러는 식서스에서 조엘 엠비드와 벤 시몬스 등 기존 스타 선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팀을 다시 플레이오프에 끌어올렸다. 식서스는 플레이오프 동부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카와이 레너드가 이끄는 토론토 랩터스와 맞붙었는데 이 시리즈가 희대의 명승부로 남았다.

버틀러는 2차전에서 30점, 4차전에서 29점, 6차전에서 25점을 넣으며 주포로 활약했다. 결국 7차전까지 간 이 시리즈는 레너드의 극적인 버저비터 한 방으로 랩터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 레너드의 슛은 림을 5번이나 튕기고 들어갔다. 랩터스는 기세를 몰아 우승까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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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NBA 파이널 5차전에서 슛을 쏘는 버틀러.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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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스쿨’ 마이애미의 리더로

식서스에서의 활약으로 주가가 올라간 버틀러에게 2019-2020시즌을 앞두고 많은 팀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많은 팬들은 버틀러가 식서스에 남거나 수퍼스타들이 많은 팀으로 가서 우승을 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선택은 마이애미 히트였다. 히트는 전체적으로 선수들은 훌륭하지만 최정상급 스타는 없는 팀이라 버틀러의 마이애미행은 의외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알고 보니 버틀러의 마켓대학 선배이자 히트의 레전드인 드웨인 웨이드가 버틀러에게 히트를 적극 추천한 것이었다. 웨이드는 마이애미의 훌륭한 기후 조건과 더불어 히트의 팀 분위기가 ‘올드 스쿨’인 버틀러에게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 생각은 정확했다. 히트의 루키인 타일러 히로는 2019-2020시즌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시카고 로욜라대학에서 버틀러와 함께 훈련했다. 당시 히로는 버틀러와 마찬가지로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에 매달렸다.

히트의 동료들은 버틀러의 열정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려 했다. 확실한 히트의 리더로 자리 잡은 버틀러는 동부 5위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5번 시드의 기적이 시작됐다.

◇ 파이널은 끝나지 않았다

히트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4번 시드인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만났다. 결과는 히트의 4전 전승 스윕이었다. 2라운드인 동부 콘퍼런스 준결승에선 정규리그 전체 승률 1위 팀인 밀워키 벅스와 상대했다.

전문가와 팬들은 당연히 리그 MVP가 버틴 야니스 아테토쿤보의 벅스가 우세할 것이라 전망했지만 버틀러는 1차전부터 40점을 퍼부으며 히트에 승리를 안겼다. 버틀러는 3차전에서도 30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히트가 벅스를 4승1패로 누르고 콘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콘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 치열한 접전 끝에 히트는 셀틱스마저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섰다. 그리고 LA 레이커스에 1승3패로 밀린 벼랑끝 5차전에서 명승부 끝에 기사회생했다.

NBA 파이널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무대다. 5차전까지 보여준 버틀러의 퍼포먼스는 길이 남을 만하다. 물론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히트와 레이커스는 한국 시각으로 12일 오전 8시30분 6차전을 벌인다.

5차전에서 47분12초를 뛰며 막판엔 방전된 듯한 모습을 보인 버틀러가 어떤 모습으로 6차전에 나타날지 관심이다. 농구 팬들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버틀러가 또 한 번 한계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펼쳐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버틀러가 2020 NBA 파이널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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