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의 출범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첫 의장국이어서 그해 12월 후쿠오카에서 열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그 이후로는 베이징-제주-도쿄-베이징을 돌아가면서 2012년 5월 제5차 정상회의까지 해마다 열렸으나 그해 12월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들어서면서 중단됐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 식민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격화한 탓이다. 6차 정상회의는 3년 반만인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 아베 일본 총리가 자리를 함께했다. 외교 당국 간 물밑 협상으로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 합의에 근접했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달후 양국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를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도, 부실한 위안부 합의 논란이 이어졌고, 문재인 정부 들어 진상조사 결과,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정부 입장 위주로 합의한 데다가, 한국 정부가 해외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면 합의'의 존재가 드러났다. 한일 갈등은 첨예화됐고, 3국 정상회의는 또다시 중단 위기를 맞았다가 3년만인 2018년 5월 도쿄에서 재개됐다.
제7차 정상회의는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 아베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작년 12월 청두에서 개최됐다. 회담을 한달 앞두고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계기로 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등 잇단 경제보복 조치에 우리 정부가 맞대응하면서 일제 상품불매와 관광 보이콧, 혐한 정서 확산 등 양국국민 간 갈등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그 강도도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회담 전 분위기로만 본다면 지금보다 나을 게 없었는데도 아베 총리는 참석했다. 청두 회의에서 3국 정상은 한반도평화가 공동의 이익에 부합된다면서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을 채택했고 보호무역주의 대응과 환경·보건 협력에도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일 간 양자 현안은 그대로지만, 3국이 협의할 대목도 있는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3국 정상회의를 연계하려는 스가 총리의 모습이 속 좁게 비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사실 일본 정부는 아베 내각 시절을 비롯해 사례에 따라 회담을 거부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기에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라고도 하는 등 일관된 원칙이 없이 오락가락했다. 특히 스가 총리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는 '조건 없이 만날 의향이 있다'고 말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낸 반면, 한국에 대해서만 몽니를 부리는 인상이 짙다. 교도통신마저 "일본은 이전에 정상회담 참석을 외교카드로 쓰는 다른 나라의 수법을 비판해온 경우가 있다"며 스가 정부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했을 정도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논란도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일본 정부는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위해 독일 정부와 베를린 시당국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있다. 누차 못 박았지만,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닌 민주주의 국가다.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전범기업 자산 매각 결정은 행정부가 뒤집을 수 없다. 정부는 정중하게 스가 총리의 참석을 요청하더라도 애걸복걸할 필요는 없다. 국제무대 첫 데뷔전이다. 스가 총리가 여러모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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