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돌아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마다 생소한 선거 용어들이 국제 뉴스를 뒤덮는다. 2016년에 이어 46대 대선이 실시된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언론을 포함한 외신들은 미 선거 제도를 쉽게 풀이하는 콘텐츠를 일제히 쏟아냈다.
미국 선거 절차와 각종 용어들은 미국인조차 "중학교 공민권(公民權) 수업 때 배운 뒤론 쳐다도 보기 싫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복잡한 용어들 가운데 실제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는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이다. 선거인단을 둘러싼 의문을 육하원칙에 맞춰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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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인단이란 무엇인가
미국은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권이 있는 국민이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뽑는다. 국민이 선출하는 선거인단은 사전에 어느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지 사전에 밝히기 때문에 결국 국민의 표심이 선거 결과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선거인단은 대통령을 결정짓기 위해 따로 모여 최종투표를 실시한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싸움이다. 선거인단 총 538명 중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최종 승리한다. 대선이 열리는 해마다 미국 언론이 'Road to 270(270표로 가는 길)' '270 to win(승리를 위한 270표)' 같은 이름을 붙인 코너를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한다면 전국 지지율에서 밀려도 이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전국적으로 약 300만표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획득 수에서 뒤져 고배를 마셨다.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 역시 득표수로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를 54만표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선 266대271로 졌다.
총 선거인단 숫자는 각 주 인구 비례에 따라 배정된 하원의원 수(435명), 주마다 2명씩인 상원의원 수(100명), 그리고 워싱턴DC의 3명의 합계다. 선거인단은 인구 최다 주인 캘리포니아가 55명으로 가장 많고, 몬태나·노스다코타 등이 3명에 그쳐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 어떻게 확보하나
미국은 독특하게 '승자 독식'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각 주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선거인단 38명이 걸린 텍사스에서 A당 50.1%, B당 49.9%를 각각 득표해 차이가 거의 없을지라도 과반을 차지한 A당이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간다. 간발의 차이로 선거인단 수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대선 막바지로 갈수록 표심이 출렁이는 '경합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미국 50개주와 워싱턴DC 가운데 대부분은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디가 우세한지 뚜렷하다. 사실상 승부처는 경합주인 것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각각의 텃밭보다 경합주에 공을 들인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경합주로는 플로리다·펜실베이니아·애리조나 등 6곳이 꼽힌다.
다만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 두 곳은 예외로 선거인단을 나눠 갖는 방식을 취한다. 주 전체의 승자가 상원의원 몫인 선거인단 2명을 차지하고, 나머지 하원의원 몫은 하원의원 선거구별로 승자가 선거인단을 1명씩 배정받는 식이다.
▲ 왜 시작했나
정치적 알력에 따른 결과다. 미국 헌법이 제정된 1787년 당시 인구가 적은 주들은 직선제를 실시할 경우 본인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선거권이 없는 노예가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남부 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선거인단 제도는 주별 인구가 천차만별인 점을 감안해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안된 '민주적 장치'인 셈이다. 광활한 영토에서 원활하게 교신할 통신이나 교통 수단이 불편했던 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선거인단 제도를 끝내고 직선제로 바꾸려는 의회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1969년 9월 직선제 개헌안이 약 82%의 찬성표를 얻어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남부 백인의 목소리'란 별명이 붙은 상원 법사위원장 제임스 이스트랜드가 주도한 반대 움직임 끝에 부결됐다.
직선제 개헌론자 중에는 선거인단 제도로 피해를 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있다. 그는 영부인 시절이던 2000년부터 선거인단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200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며 "선거인단을 폐지하고 대통령 직선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로도 힐러리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수차례 '민주주의를 위한 직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직선제는 실제 미국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시민단체 '메이크에브리보트카운트'가 작년 7월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다 득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도록 규칙을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찬성 65%, 반대 26%로 긍정 응답이 많았다.
▲ 누가 될 수 있나
지난 10월 1일 뉴욕주(州) 선거위원회가 발표한 선거인단 명단 중 '힐러리 클린턴'이 포함돼 있어 반짝 화제가 됐다.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이라 일찍부터 바이든 후보의 승리가 점쳐졌던 뉴욕주 선거인단이 된 힐러리는 인터뷰에서 "빨리 그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정당별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힐러리 사례에서 보듯, 선거인단은 '당 실세' 중에서 뽑히는 경우가 많다. 주로 대선이 있는 해에 실시된 전당대회 때 각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지명한다. 대통령 선거권을 행사하는 명예로운 자리인 만큼 SNS 자기소개란에 이 경력을 자랑삼아 적어두는 사람도 있다.
선거인단은 정당별로 각 주에 걸린 선거인단 수만큼 배정된다. 뉴욕주 선거인단 후보 명부를 보면, 공화당·민주당·보수당·노동가족당·녹색당·자유당·독립당 등 7개 정당별로 각 29명씩 이름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해당 주의 주민들이 선거인단이 누구인지 아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 언제 모이나
'11월 첫 월요일 다음 화요일'로 알려진 대통령 선거일(올해 11월 3일)은 엄밀히 따지면 선거인단 선거일이다. 선거인단은 올해의 경우 약 한 달 뒤인 12월 14일 각 주 의회에 모여 주별 승자에게 표를 던진다. 이 결과를 내년 1월 6일까지 의회 승인을 받아 발표한 뒤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선거인단 투표는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주별 선거인단의 윤곽만 드러나도 사실상 당선자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은 11월 8일에 치러졌지만, 선거인단 최종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당일 트럼프의 승리가 확실시됐다.
그러나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로 우편투표가 급증하면서 12월 14일까지 선거인단 명부를 확정짓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우편투표의 적법성을 두고 시비를 따지겠다고 예고했고, 소송전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보 중 누구도 선거인단의 과반을 얻지 못하면 미 하원이 대통령 선출을 위한 표결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 건 양당제가 굳어진 현대 미국과 달리 다수 정당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1800년과 1824년 두 번 있었다. 트럼프의 개표 불복을 의식한 듯,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이번 대선 하루 전날 "개표와 관련해 하원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어디서 모이나
선거인단 538명 전원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마다 배정된 인원의 선거인이 주의회에 집결해 최종 투표를 한다.
선출된 선거인이 정작 최종 투표 때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다. 선거인은 민의를 따르겠다고 서명하지만 대부분 주에선 이를 따라 투표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인을 '배신 투표자(faithless elector)'로 부른다.
그러나 선거인의 투표 행위는 '비밀투표'가 아니다.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기 전 공개적으로 불복 의사를 밝히고 관련 서류에 서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드러난다.
2016년 대선 당시 배신 투표자는 모두 7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워싱턴DC의 민주당 선거인단인 피터 브렛 치아팔로였다. 주 선거 결과에 따르면 힐러리에게 표를 줬어야 했지만 그의 선택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자신의 목적은 도널드 트럼프의 낙선이었다며 "건국의 아버지들은 후보자(힐러리)가 부적격일 경우 선거인단은 이를 멈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신 투표자를 처벌하는 워싱턴DC에선 그에게 1000달러의 벌금을 매겼다.
다만 지금까지 선거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수의 배신표가 나오지 않아 큰 문제로 불거지지 않았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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