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간) CNN은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당시 보수성향 방송사인 폭스뉴스 내부에 이 같은 메모가 돌았다고 폭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불복을 시사한 동시에 법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CNN은 또 다른 메모에 "추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양쪽 사이드를 모두 보도하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하면 회사는 "바이든이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적힌 초호화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메일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로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매직넘버 '270명'을 확보하거나 폭스뉴스가 당선 확실 시 보도를 하려면, 우리는 완전히 투명해져야 한다. 당분간 그를 '당선인'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고 CNN은 밝혔다. 폭스뉴스는 2016년 당시 선거일 바로 다음날부터 '트럼프 당선인'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 대선이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트럼프 지원군'을 자처해온 보수언론 폭스뉴스 움직임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 어떤 곳보다 끈끈했던 둘 사이가 시시각각 틀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 언론은 일제히 '폭스뉴스와 트럼프의 긴 연애가 끝날까(워싱턴포스트)' '트럼프 세상과 폭스뉴스는 지저분한 이혼으로 향하고 있나(폴리티코)' 등 제목으로 추후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자주 폭스뉴스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훌륭한 방송에 나오게 돼 영광"이라고 극찬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백악관 내 외부 조력자로 활동했던 폭스뉴스 간판앵커 숀 해니티를 비롯해 루 돕스, 지닌 피로 등 친트럼프 언론인 다수가 폭스뉴스 출신 진행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폭스뉴스도 대통령, 백악관 관계자 인터뷰 등을 성사시키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폭스뉴스의 '변절'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현지 언론들은 판단하고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편의에 기반한 모든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경우 관계의 종말을 암시하는 증거들은 넘쳐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과 루퍼트 머독 소유 폭스뉴스는 그들만의 분리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며 "사실 완벽한 결합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벽한 분리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혹평을 내놨다.
이를 증명하듯 9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채널에선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이 진행하는 기자회견 중계가 돌연 끊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매커내니 대변인이 민주당 측 사기투표를 주장하자 폭스뉴스 스튜디오의 닐 커부토 앵커가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화면 송출을 중단한 것이다. 커부토는 백악관이 선을 넘고 있다는 뜻에서 "워~워~"라고 외친 뒤 "증거 제시도 없이 이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순 없겠다"는 이유를 밝혔다고 WP는 전했다.
앞서 지난 3일(현지시간) 경합지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 후보의 승리가 유력하다고 가장 먼저 방송한 곳도 폭스뉴스다. 애리조나주는 개표가 98%가량 진행됐지만 현재까지도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 득표 수 차이가 불과 0.4%포인트밖에 나지 않아 승패를 확정지을 수 없는 곳이다. 이에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머독에게 전화까지 걸어 항의와 분노를 표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미 공영방송 NPR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잊고 있는 것은 머독의 보수주의가 실용주의로부터 발현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독은 항상 사업을 꾸려 나갈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며 "그는 승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하고 그 말인즉슨 머독과 그의 회사들이 한순간에 변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전망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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