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피의자 휴대폰 비밀번호 공개 강제법' 검토 지시
추 장관 "디지털 시대 형사법제 발전 목적" 강조
"천상천하 유추독존", "헌법 뒤흔들어" 야권서 비판 잇따라
"'사법 방해죄'와 다를 게 없다" 시민단체 역풍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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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토를 지시한 '피의자 휴대폰 비밀번호 공개 강제법', 이른바 '비번 공개법'을 두고 역풍이 불고 있다. 정치권에 이어 시민단체에서도 해당 법안이 '반헌법적'이라는 취지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앞서 추 장관은 12일 채널A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 법무부에 "채널A 사건 피의자인 한동훈 연구위원처럼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 아래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추 장관은 이날 이같은 법안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디지털 시대에 맞춰 수사도 과학수사기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추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은 피의자가 협력하지 않으면 과학수사 전환이 힘들다"라며 "디지털 시대 형사법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법안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권리대장전의 나라 영국에서는 이미 이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등 인권국가도 암호 해제나 복호화 요청 등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법제를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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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비번 공개법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13일 논평에서 "헌법에 보장된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상 방어권을 무너뜨리는 반헌법적 발상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선포했다"며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한 천상천하 유추독존(唯秋獨尊)"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무법 장관의 폭주를 눈 감아주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라며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정의와 공정에 쿠데타를 일으킨 장관 지시에 따르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또한 해당 법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기존 형사법에서 보장하는 자백 강요 금지, 진술거부권, 자기방어권, 무죄 추정 원칙을 뒤흔드는 처사"라며 "우리 헌법 12조는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법률가인 나부터 부끄럽다"라며 "'자백을 강제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법과 무슨 차이가 있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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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 공개법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3일 성명을 내고 "헌법은 누구나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기부죄거부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며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추 장관의 법률 제정 검토 지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에서 비번 공개법에 대해 "과거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추진했다가 인권 침해 논란이 일어 폐기된 '사법 방해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에 휴대폰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발상은 사생활 비밀 보장이라는 헌법 취지에 정면 역행한다"며 "국민 인권을 보호하고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감시·견제해야 할 법무부가 개별사건을 거론하며 이런 입법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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