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총리실 검증, 더 할 말 없다” 외면
◇MB “나에게 책임, 국익 반할 땐 결단 내려야” 기자회견 열어 사과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동남권 신공항 관련 특별 기자회견 도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4월 1일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사실상 백지화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내린 객관적 평가를 정부는 고뇌 끝에 수용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영남지역 주민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전 대통령은 “나라 살림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경제적 타당성이 결여될 경우 국가와 지역의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후보 때 국민에게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고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반하면 계획을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문제는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인 이명박, 저에게 책임이 있지 내각이나 청와대는 책임이 없다. 보고를 받고 제가 결단을 했기 때문에 내각이나 청와대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없음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적 비난과 공약 파기라는 논란을 다 짊어진 채 이 문제는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이 문제의 불씨를 되살릴 건 정치권이었다. 당시 대선을 준비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신공항 백지 결정에 대해 “이번 결정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다지만 미래에는 분명 필요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다”며 대선 공약으로 이를 부활시켰다.
◇박근혜 “김해 신공항이 최선, 전문가 존중” 사과 대신 설명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016년 6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나왔다. 당장 공약 파기 논란이 제기됐고, 영남권 민심이 들끓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과 달리 유감표명이나 사과를 하진 않았다. 대신 “그동안 여러 지역에서 신공항 건설을 갈망해 왔는데 작년 1월에 신공항과 관련된 지자체장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외국의 최고 전문기관을 선정해 용역을 의뢰해 그 결과에 따르기로 약속한 바 있다”며 “의뢰를 받은 외국의 전문기관은 모든 것을 검토한 결과 김해공항을 신공항급으로 확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정부도 이러한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했다. 김해공항 확장이 곧 동남권 신공항이라는 논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는 김해 신공항 건설이 국민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전문기관의 의견 존중, 정부의 지원이 잘 조화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결정으로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여당의 부산과 대구·경북 지역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文은 침묵, 2016년에는 “고심한 결정으로 이해”
문재인(앞줄 왼쪽에서 셋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부산시당 관계자들이 2016년 6월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신공항 유치를 결의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에 대해 대구의 김부겸(오른쪽 사진) 의원은 “공항 문제에 정치인들이 개입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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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한번 떨어졌던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2016년 7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했던 문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신공항 확장 결정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지자체간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심해 그런 결정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김해공항뿐 아니라 가덕이냐 밀양이냐 하며 새로운 입지 모색하고 그렇게 해서 지자체 갈등 일으킨 게 바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였다”며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을 내렸다면 그동안 밀양이냐 가덕이냐 이러면서 지자체갈등 일으킨 과정에 대해서는 적절한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공항 문제를 두고 두 번 연속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했으니 그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수준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과 달리 2017년 대선 때는 가덕도 신공항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부산 신항만과 동남권 신공항, 유라시아 철도 등 육해공 글로벌 복합 교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덕도 신공항’을 전면 추진하지 않자, 지방선거에서 대승한 민주당의 부산, 경남 지자체장들은 다시 가덕도 신공항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3월 부산을 방문해 “검증 결과를 놓고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검증 논의를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두고 부산 정치권은 “대통령의 신공항 선물”로 해석했고, 결국 총리실 산하 검증위가 김해신공항이라는 정부의 결정을 뒤집었다.
정부의 정책 결정을 정부 스스로 뒤집었으면 그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해명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을 했고, 박 전 대통령은 “김해공항 확장이 동남권 신공항”이라며 정책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지층과 반대층 모두에게 비난을 들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총리실 산하 검증위 결정에 더할 말이 없다”고 했다. 왜 4년 전 결정이 잘못됐고 정부의 결정을 정부가 왜 뒤집었는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명해야 한다. 내년 4월로 예정된 부산시장 선거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명확히 설명을 해야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등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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