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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채민기 기자의 신사의 품격] 애들이나 입는 옷? 바다 사나이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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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코트’ 말고 ‘더플코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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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플코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집요한 오해를 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옷은 1990년대 후반 전국 중고생들 사이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떡볶이 코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인기가 너무나 선풍적이었던 나머지 그대로 ‘애들이나 입는 옷’으로 굳어져 버렸다.

모포처럼 탄탄한 모직물로 만드는 이 코트는 그러나 그리 간단한 옷이 아니다. ‘떡볶이’는 특유의 토글(toggle·옷자락의 고리에 거는 나무토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어부와 수병들이 곱은 손에 장갑을 끼고도 옷자락을 여밀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더플코트는 거친 바다 사나이들의 옷이었다.

영국 해군이 채택했고 2차 세계대전 막바지쯤엔 육군에서도 사랑받았다. 이 옷을 애용했던 최고의 아이콘은 영국의 2차대전 영웅 몽고메리 원수다. 그는 열차를 개조한 야전 지휘소 벽에 독일군 수뇌부의 사진을 걸어놓고 투지를 불태운 강골이었다. 종전 후 이곳에서 더플코트를 입고 찍은 유명한 흑백 사진이 남아 있다. 자타 공인 더플코트의 원조인 영국 글로버올(Gloverall)의 대표 상품명 또한 ‘몬티(Monty·몽고메리의 애칭)’다. 글로버올은 전쟁이 끝나고 남은 군납품 코트를 사들여 민간에 팔았고 이후 직접 상품화해 더플코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더플코트는 바탕이 넓은 옷이다. 이렇게 남성미를 뽐내면서도 성별·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사람으로 치면 거친 마초보다는 원만한 인품의 신사에 가까울 것이다. 같이 입는 옷이 포멀(정장)인지 캐주얼인지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패딩턴’의 곰돌이부터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연기한 외계인까지 두루 입는다. 보통 남성들이 참고할 만한 모습은 KBS 드라마 ‘김과장’(2017)에 나온다. 조폭의 유령 회사에서 일약 최고의 대기업으로 전직한 김 과장(남궁민)은 여느 월급쟁이들과는 다른 면모를 슈트 위에 걸친 더플코트로 표현했다. 군용 더플코트는 담요를 두른 듯 넉넉한 옷이었지만 오늘날엔 김 과장처럼 너무 크지 않게 입어야 맵시가 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더플코트에 대하여’에는 온갖 코트가 유행하는 동안 더플코트를 입고 살았더니 “세상이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에 온 듯, 올해 들어 더플코트를 입은 젊은이가 늘어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는 우스개와는 다른 이야기다. 더플코트는 유행과 무관한 클래식(고전)이기 때문이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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