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9 (화)

바이러스 악재도 날려버린… 영화계 거센 女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여성이 주도한 ‘F등급 영화’ 부상

조선일보

영화 '내가 죽던 날' 기자 간담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여성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들이 여성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잘 준비된 영화인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 간담회에서 주인공 여형사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씨가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시사회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각본·연출을 맡은 박지완 감독은 물론, 주연 배우 김혜수·이정은·노정의까지 단상의 주인공이 모두 여성들이었다.

김혜수씨의 바람이 일찍 실현되는 것 같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악재 속에서도 여성 영화인들이 제작·감독·각본에 뛰어들면서 전면에 부각되는 작품이 크게 늘었다. 제작이나 배역에서 여성 역할이 두드러진 작품을 여성(female)의 머리글자를 따서 ‘F등급 영화’라고도 부른다.

고아성·이솜·박혜수 등 20~30대 여성 배우 3명이 주연을 맡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지난 10월 개봉 이후 관객 155만명을 동원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 개봉한 영화 ‘디바’는 제작자(김윤미 영화사 올 대표)와 연출(조슬예 감독), 주연(신민아·이유영)까지 여성 영화인이 도맡아서 화제를 모았다. 최근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 경쟁 부문 상영작도 2018년과 2019년 각각 48.6% 수준에서 올해는 67.5%로 늘었다. 단편의 경우엔 85.2%가 여성 감독의 작품. 실제로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감독), ’69세'(임선애 감독), ‘프랑스 영화’(김희정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감독) 등 최근 주목받은 독립 영화 중에는 여성 감독의 연출작이 적지 않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여성의 이야기가 더 많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장편 부문에서 신인 감독들도 두각을 보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F등급 영화’의 부상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미 할리우드에서도 인종차별 반대와 성폭력 고발 운동의 영향으로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최근 ‘원더우먼’ ‘뮬란’ 등 흥행 대작도 백인 남성 위주의 캐스팅에서 벗어나 유색 인종과 여성 배역을 안배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국내 대학 영화학과에서도 10~20년 전부터 연기뿐 아니라 시나리오 창작·연출·촬영까지 다양한 전공에서 여성 전문 인력들이 쏟아졌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이들이 단편·독립 영화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뒤 최근 대형 상업 영화에도 진출하면서 활동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코로나 여파로 남성 배우 중심의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개봉 연기되면서, 여성 중심의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계 여풍은 작품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화에 이름이 있는 여성이 최소 두 명 이상 나오고, 이들이 대화를 나누며, 대화 주제가 연애나 외모 등이 아니어야 한다는 기준을 흔히 ‘벡델 테스트’라고 부른다. 1985년 미국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이름을 딴 이 테스트는 영화·드라마에서 여성이 얼마나 주체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꼽힌다. 영화 평론가 윤성은씨는 “벡델 테스트가 좋은 영화의 유일한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숨은 경직성을 돌아보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계기는 된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